디나이얼 2
부제: 어느 퀴퍼에서 생긴 일
주의: 기독교(개신교) 비판적입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하경은 실내에서 나오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경찰 버스가 도로가에 서 있었다. 하경이 바라보는 쪽에도, 그 반대편에도. 시끄러운 북소리와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머리에 가득 찼다. 하경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중 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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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하실. 불이 꺼져있어 벽에 붙어 있는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위층도 조용하다. 교회 의자가 양쪽으로 길게 깔려 있고, 맨 끝쪽에 작은 탁자가 있다. 거기에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청년부 하경은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인다. 바지 주머니에는 새신자 접수증 뭉텅이가 들어 있다. 아직 작성되지 않은 새것이다. 길거리에서 혹여나 새 가족을 만날까 갖고 있던 것이다. 물티슈와 전단지도 함께 들어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동성애 조장하는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지만 하경은 정장에 구두를 입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텅 빈 지하실에 발소리가 울렸다. 하경은 탁자에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반대편에 앉는다.
“저, 목사님. 오늘은 무얼 위해 불렀죠?”
“그게 말이다.”
평소와는 다른, 낮고 짙게 깔린 목소리였다. 목사는 한숨을 쉬며 안경을 벗었다. 순간 목사의 몸이 반짝 하고 빛나더니 다시 사그라들었다. 목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아오, 이거 쉽지 않네. 빙의 당해주는 것도 어렵구먼.”
“빙의라고요? 그런 게 성경에 나오던가요?”
목사가 안경을 하경에게 건네주었다. 하경은 안경을 요리조리 살펴보기도 하고, 한번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 사이 목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나오지. 다만, 악한 영이 아니라 선한 영에도 빙의될 수 있다는 것. 그걸 내가 발견했어.”
“그렇지만, 그런 게 과학적으로 가능해요?”
“과학을 전부 믿는 거니?”
날카로운 목사의 질문에 하경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진화론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렇군요. 그런데 선한 영에 빙의해서 뭐하게요?”
“간단해.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거야.”
목사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안경의 이름이 뭔지 아니? 베드로. 예수님의 성실한 신자였지.”
“아, 그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다던….”
“그래. 그 경험은 베드로밖에 한 적 없어. 나도 베드로가 그때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 예측할 수 없지. 하지만 이 안경을 쓰면, 베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어. 더불어 그때의 경험도 생생하게 전해져오지. 그러면 무엇이 가능할까?”
“어…. 그러게요.”
“생생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해.”
목사는 안경을 고이 접어 안경집에 집어넣었다. 하경은 목사를 경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설교를 하기 직전에 안경을 낀다. 그러면 은혜가 내려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그 은혜. 덕분에 나는 영광스럽게 설교를 하고, 신자 여러분들에게도 은혜를 전해줄 수 있어.”
“그렇군요….”
하경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부러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목사는 알고 있었다. 목사는 기다리는 질문이 있다는 듯이 먼저 하경에게 물었다.
“그럼 하경, 너는 바라는 게 있니?”
“뭐가요?”
“‘빙의’라는 현상을 알아버렸잖아.”
“아, 어, 음….”
하경은 망설이는 척 하다가 속에 담아둔 말로 대답했다.
“저도 베드로에게 빙의될 수 있나요?
“좋은 질문이야. 베드로는 이미 나와 연을 맺었어. 그러니 너에게 빙의되지 못하지. 역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지 못해.”
하경은 앞에 목사가 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리고 푹 실망했다. 목사는 어깨가 축 처진 하경에게 말했다.
“아, 아쉬워할 필요 없어. 내가 아주 특별한 빙의기술을 만들어냈거든.”
“뭐죠?”
화색이 된 하경에게 목사는 속삭였다.
“예수에게 빙의되고 싶지 않니?”
“네?”
별안간 목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하경에게 말했다.
“대신 너에게 아주 특별한 임무를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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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은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깃발을 뽑아들었다. 여섯 색깔의 무지개로 된 손바닥만 한 깃발이었다. 예진은 깃발을 위로 휘둘러도 보고, 모자에 꽂아보기도 했다. 최대한 화려한 옷으로 차려입고 싶었는데, 옷장에는 검은색 옷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검은색 옷을 입은 채로 예진은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의 최대 고민은 이거였다. 전 여자친구를 마주치면 어떡하지. 그 애도 소수자 인권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예진과 헤어지고 몰래 조직위원회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혹은 모든 걸 부정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더 문제는, 예진은 내심 재결합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다시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시작부터 끝까지 집회 장소에 있는 수밖에.
그러려면 당당히 예비를 해야 했다. 예진은 500ml짜리 생수병을 세 개 가방에 넣었다가,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에 하나 뺐다. 그런데도 가방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무래도 보조배터리 때문인 것 같았다. 이 휴일에, 이 날씨에 지하철에 탔다가는 집회 장소까지 가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았다.
그래, 오늘은 몇 없는 축제 날이니까. 일단 이대로 가보자.
막상 예진이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건너편에서 북을 치는 사람들도, 본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도. 지방 집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여기에서 전 여자친구를 찾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았다.
에이, 그냥 꿈이었던 거야. 잊어버려!
예진은 본인이 한 줄기 희망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시작 부스부터 시작해서 한 곳 한 곳씩 둘러보았다. 스티커를 나눔받고, 뱃지를 샀다. 포스트잇에 미래의 꿈을 적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혼자 찍었다.
그래, 혼자서도 즐길 수 있어. 예진은 애써 떨쳐버리려 노력했다.
문득 어떤 사람이 예진의 팔을 잡았다.
“저, 저기요.”
목소리가 닮았어. 예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요.”
10대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전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예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라요.”
“아니, 그게 아니라 교회 건물이 한번 크게 일렁였어요. 그리고….”
그 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세게, 아홉 번. 그 리듬은 다음과 같았다.
· · · – – – · · ·
“주변에 도움을 청했나 봐요. 곧 혐오세력들이 몰려오지 않을까요?”
순식간에 장내가 혼란스러워졌다. 예진은 이 애가 떨고 있는 걸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일단 지하철역으로 갑시다.”
예진과 그 학생은 인파 속에서 틈을 찾아 서둘러 을지로입구역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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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안경을 벗었다. 이제 곧 큰 파도가 올 것이다.
평범한 사람인 척 하고 인파에 섞여 있는 목사는 하경이 교회 건물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베드로에 빙의했을 때 그는 신도들이 감화된 것을 보았다. 예수가 빙의된 하경이라면, 그렇다면 저 동성애자 녀석들을 한번에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 뎅뎅 울리고, 천을 목에 감싸고 무전기를 든 하경이 드디어 교회 건물에서 나왔다. 신성한 천이 아니라 수건처럼 보인다는 점이 흠이었다. 조금 더 제대로 묶어줄걸. 목사는 하경이 동성애 시위대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었던 것 같았다. 하경이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비켜주었다. 흡사 모세의 기적 같았다. 교회에서 동원된 사람들은 하경을 알아보고 전부 비켜주었다. 반면 무지개를 입은 녀석들은, 하경이 뭐라 말하자 다들 비켜주었다. 목사는 마음속으로 ‘하경이 불쌍한 저것들을 치유했다’로 받아들였다.
하경이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회장으로 나아갔을 때, 누군가가 인파 속에서 튀어나와 하경을 쳤다.
목사는 하경의 근처로 살금살금 숨어들어갔다. 잘 보니 어린애 한명은 도망갔고, 하경과 시커먼 여자애 한 명만 남아있었다.
가까워지자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김하경 씨 맞나요?”
잠깐만, 저 여자애가 어떻게 김하경을 알아? 목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경은 피하지 않고 예진을 응시했다.
“예진아.”
“하경아, 어, 음…. 그러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그치?”
“나 이제 교회 다녀.”
잘한다! 목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던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전부 쓸어버리는구먼.
“아, 어. 그렇구나.”
“비켜.”
“응?”
“비키라고.”
하경은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만나는 여자 있어.”
목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경이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하경이가 사실, 설마 정말 그 동성애자였다고? 목사는 눈을 찌푸리며 안경을 다시 썼다.
“미안.”
그리고 하경은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목사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충격을 견디며 목사는 홀로 남은 예진에게 다가갔다.
예진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잊어버린 채로 멍했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경이 남자…. 아니, 여자친구에요?”
“전… 이요.”
“그럴 리 없잖아요.”
목사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진의 코가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제 전 여친 맞아요.”
“무슨 소리세요. 하경이가 그럴 리 없잖아요.”
“제 전 여친 맞다니까요? 혹시 전 애인이라도 되세요? 아니면 혐오세력이세요?”
“혐오세력 아닙니다!”
목사는 크게 외쳤다.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목사 쪽으로 돌아보았다. 목사는 음절 하나하나를 곱씹듯이 말했다.
“혐오세력 아니고, 하경이는 동성애자 아니라고요.”
그때, 목사의 무전기가 지지직 소리를 냈다. 무전기를 오른손으로 천천히 들어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윤노엘 목사입니다.”
“세 번 부인할 거라고 했죠?”
순간 공기가 멈췄다. 목사는 말을 하려 했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경의 그 음성은 ‘베드로’가 듣기에 무척이나 ‘예수’였기 때문이다.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예진은 주변 시민에게 경찰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이 오자 예진은 그제야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를 피했다. 그 와중에도 목사는 다리만 덜덜 떨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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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이는 결국 교회에서 쫒겨났다.
퀴어축제에서 아무런 방해도 하지 못했고, 빙의가 해제된 후에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님은 아무도 해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동성애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용서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냥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목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하나같이 격분했고, 하경이는 새신자 접수증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교회를 제 발로 나갔다. 덕분에 하경이는 목사들의 회식 때마다 안주거리가 되고는 했다.
예수 빙의를 위한 천은 무지개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목사들은 그걸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문제의 목사는 베드로 안경이 주머니에 잘 있는지 확인했다. 안경은 잘 있었고,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 어딘가가 걸렸다.
텅 빈 지하실, 목사는 안경을 썼다. 그리고 가슴 속으로 동성애에 대해 생각했다.
동성, 나와 동성인 사람과 손을 맞추고, 서로 안고, 입술을 맞대고….
왜 연상이 자연스럽게 되는 걸까.
그때, 베드로의 목소리가 뇌 속에서 들려왔다. 목사는 움찔했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얼은 디나이얼이라더니 진짜네?”
// 끄적끄적 by 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