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호. 사랑하는 당신에게.
안녕, 사랑하는 당신. 나예요.
사랑하는 당신이 보고 싶어서 편지를 써요. 재밌네요. 펜을 들었다던가 종이를 앞에 두었다거나 하는 현실에 있는 물건으로 비유를 하면 참 낭만적이고 당신을 향한 마음이 전해질 것 같은데 글쓰기 에디터를 열었다고 하면 왠지 성의 없어 보여요.
비록 낭만도 멋도 없는 글쓰기 에디터를 통한 편지지만 당신은 내 마음을 알아주겠죠? 믿을게요. 그럴 거라고.
사랑하는 당신.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나요? 여기는 일요일 아침이에요. 이 편지를 읽는 시점에서 당신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저는 이른 아침 7시에 일어났답니다. 일어나자마자 아침 약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셨어요. 언제부턴가 아침에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이제는 거르면 아침에 정신이 차려지지 않을 정도예요. 카페인 중독이 아닌가 걱정이 되다가도 아무렴 어때 싶어요.
부지런히 산책도 다녀왔답니다. 겸사겸사 쌓여있는 쓰레기도 버렸어요. 최근 정신과 약을 바꿨는데, 그게 참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슈퍼맨이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해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원래 이게 보통인 걸까요, 아니면 약효과로 내가 과하게 활동적이 된 걸까요? 어느 쪽이든 다행이에요. 밀린 일들을 하나하나 해치워가고 있거든요.
산책을 다녀왔는데 너무너무 예쁜 것들이 많았어요. 세상이 초록색이더라고요. 풀내음과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렀어요. 머리가 엉망이라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기분 좋아서 모자 속으로 바람을 맞을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웠답니다.
산책로를 보여드렸으니 하는 말인데 저는 신축 아파트 단지의 반듯함보다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의 구불구불함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딘가가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고 그저 구불구불 상상의 여지가 많은 그런 아파트 단지요. 물론 신축 아파트 단지에 가면 부지도 넓고 번듯해서 시원하긴 하지만, 거기에서는 지금처럼 사소한 풍경에 정을 들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가 지금 사는 곳과 비슷한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지만요.
사랑하는 당신, 나는 오늘을 이렇게 시작했어요. 당신의 하루가 궁금하네요. 여유가 있다면 답장을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사랑해요.
2024-04-21 일요일 아침. 당신을 사랑하는 속삭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