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호. 오늘도 보고 싶은 당신에게

내 사랑, 즐거운 하루 되었나요? 여기는 저녁 8시를 막 넘겼어요. 저는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 가볍게 하이볼을 마시고 있어요. 배부르게 먹고 디저트까지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쉬어가고 있답니다.

오늘 좋은 일이 둘이나 있었어요. 하나는 저번에 좋아하는 그림 작가님께 의뢰한 그림의 중간 작업이 날아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그림 작가님의 이벤트 경품이 도착했단 거예요. 두 분 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들이라서 정말정말 행복해요.

의뢰했던 그림의 경우는 사실 완성본을 주시려다가 늦어졌다면서 미완성이라며 보내주신 건데요.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게 미완성일 리가 없잖아!?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으니까요. 그대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얼마나 참아야 했는지 몰라요. 어린 시절에 제가 만든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그린 그림인데 따뜻하고 기분 좋아지는 풍경에 활짝 웃는 얼굴로 그려주셔서 그림을 따라 함께 웃고 말았답니다. 지금도 이런데 작가님 본인이 완성이라고 인정하시는 그림은 어떤 걸지 벌써 궁금해져요. 정말이지, 감동을 주는 분이셔요.

다른 그림 작가님게서 주신 선물은 방금 막 도착해서 열어본 참이에요. 제대로 보지는 못 했어요. 옆에서 불을 꺼버린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이건 시간 여유가 있는 일이니 조금 후에 보려고 해요. 살짝 훑어봤는데 생각보다 양이 훨씬 많고 무척 좋아하는 그림이 있는데다가 새로운 그림도 너무 예뻐서 행복했어요.

사랑하는 사람. 저의 오늘은 생각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소가 있어요. 여러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또 흘러가는 그런 곳입니다. 세상에 그런 장소는 많지만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요.

아, 이야기 자체는 별 거 아니었어요. 대화 내용보다는 다른 면에서 생긴 고민이에요.

항상 다양한 화제가 흘러가는 곳이지만 오늘 나온 이야기는 꽤 진지했어요. 사회적인 약자들이 모인 곳에도 상대적인 약자가 있으며 그들에게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거든요. 말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쵸? 약자성은 교차되는 것이니까요. 소수자 내의 또다른 소수자는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보고 화가 났어요. 왜냐면 여기서 나온 또다른 소수자는 '정신질환자'였거든요.

당신도 알겠지만 저는 정신과에 다니고 약을 먹고 있는 정신질환자예요. 이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가슴 아파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저는 제 병을 알고 더 용기를 얻었답니다. 내가 게을러서,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내가 외면해서 잘 못 해온 게 아니라 단순히 아팠던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정신질환자로서 다른 정신질환 당사자인 주변 분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요. 제가 좋아하는 그 장소는 다소 정신질환자에게 냉엄해요. 그래도 저는 그게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마냥 오냐오냐 받아주는 것도 분명 좋은 대응은 아니니까요. 단지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네요.

화가 난 건 누군가 그 화제에 편승해서 이 이야기를 단순히 소수자 속의 또다른 소수자, 약자 속의 또다른 약자의 구도로 묶어버렸기 때문이에요. 저는 처음에 '상대적인 약자'가 있다고 썼죠? 소수성은 교차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거나, 더 차별받는 약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약자들끼리 모인 곳에서도 상대적으로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도 알죠? 약자끼리 모이면 보통 서로 물어뜯으면 물어뜯지 서로 배려하고 살지 못해요. 그게 인간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면 빈민가겠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배려하는 생물이 못 돼요. 궁지에 몰리면 몰릴수록 더욱 그렇죠.

사랑하는 당신. 나는 그 의견에서 배려받지 못하는 약자가 되었어요. 나는 나를 배려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마치 은혜를 내리듯이, 그런 목소리로요. 한탄하던 지인들도 배려해달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다들 배려하는 척하지만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면에선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러고는 또 태연하게 말했지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당사자성을 내세워서 모든 것을 용서받으려고 한다고요.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의견을 낸 당사자에게 물으면 서로 다른 이야기라고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요. 하지만 이걸 동시에 떠올리는 사람에게 내가 어떤 인상을 가지면 좋을까요.

소수자끼리의 연대라는 건 서로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내려다보지도 않고, 올려다보지도 않고, 그저 서로의 존재와 각자의 아픔을 인정해주는 행위를 통해서요. 배려받아야한다고요? 틀렸어요. 나는 배려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렇게 배려를 하사받아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나는 그저 인간답게, 동등하게 대우받고 싶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배려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 당신도 알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당신 못지 않게 그 의견을 낸 사람도 제법 사랑해요. 사랑하지 않으면 분노하지도 않겠지요. 아무래도 오늘 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인간보다 못한 것을 넘어서 모자란 인간끼리 모인 곳에서도 모자란 사람이란 평가를 들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이런 이야기를 한참 했어요. 그러고도 모자라서 당신에게 보낼 편지에 또 한참을 적고 있네요. 그리고 같은 주제를 반복하다가 그런 말을 들었어요. 긁어부스럼이니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라도 그만 이야기하자고. 분명 이 이야길 한 사람은 내 입을 막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랬다면 내게 직접 이야기를 했을만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들리는 곳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건, 분명 내게 들으라는 의도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머리가 복잡해요. 나는 매우 기분이 나쁜데, 이걸 여기서도 말할 수 없으면 어디가서 말하나. 나는 말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사람인데, 말하지 않고 어떻게 풀어야하나. 그런 생각으로요. 이렇게 머리 아프게 고민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랍니다.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해도 나는 분명 이만큼 고민을 하겠죠.

사랑하는 당신, 내 긴 한탄을 다 읽어주었을까요? 그랬다면 정말 고마워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수고한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내 이야기만 하는 편지가 되어버려서 미안해요. 다음에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답장 주세요.

2024년 4월 22일 월요일, 심란한 나머지 당신을 귀찮게 만들고 만 속삭임이.


언제나 당신의 행복하기를 비는 꿈 속의 속삭임이 보내는 편지.

행복한가요, 당신? 제 편지가 당신의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