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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 we became

“지하철이 안 오는 것 같지 않냐.” 장애인영화제에 난입한 모 밴드의 혐오적 발언 중 하나이다.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 탑승이 지연된 건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탑승이 시위가 된다'는 문장에서 모순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공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도 말했다는 점이다. 퀴어한 장애인, 장애를 가진 퀴어들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걸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이들은 혐오를 교차적으로 행함으로써 인권이 교차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근거를 주었다.

이 책은 장애인과 장애 인권에 대한 에세이 30여 편을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장애와 인종차별, 성소수자 인권, 성적 자기결정권 등이 어떻게 교차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이것도 장애였다고?' 싶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장애가 하나의 정의로 수렴되지 않음을 뒷받침한다. 장애와 연관된 의제는 수도 없이 많으며, 이 책은 저자들의 경험을 통해 그 내용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중 20%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장애인권도 역시 가시화의 문제인가. 관련해서 어떤 후배가 특이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으니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인이 없을 리 없다. 보이지 않는다면 왜 보이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타당하다. 그리고 장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가시화해야 한다. 또 첨언하자면 대부분의 '특혜'들은 어퍼머티브 액션조차 되지 않는,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권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더라도 장애인권의 신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실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혐오발언을 하고 살았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이런 장애인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 더 많이 출판되고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미국 정권은 트럼프가 쥐고 있다.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 이 책처럼 진보적인 프로젝트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독자적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다 보니 독서모임에서 읽게 된 책.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 없이 본문만 읽었다.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은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던 걸까 생각했다. 심지어 초반 부분을 읽었을 때는 억압된 여성의 욕망과 그 분출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해서 따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자연주의 소설이 어떤 것이고 하니, 낭만주의에 반대되는 문학사조라고 한다. 환경이나 유전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문학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애정 없는 결혼, 음침한 공간, 병약한 남편이 테레즈의 신경질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만든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테레즈와 로랑 사이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육체적 충동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이 아닌 그들의 업보인 것이다.

문학사조나 고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자연주의가 인간의 잔혹성을 묘사하게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 같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는 세상이 생각보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도 아픈 아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자연주의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일지 몰라도, 실제 인간은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다고 믿고 싶다.

작가 본인의 데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저주토끼>나 <너의 유토피아>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건너뛰고 <아무튼, 데모>부터 읽게 되었다. 아무튼, OO라는 시리즈의 한 작품인데, 정말 많은 주제들이 있다. 디지몬, SF게임, 서재, 망원동... 그 사이에서 홀로 빨간 표지로 데모. 라고 적혀있는 게 기억에 남았다. 데모. 읽어볼 수밖에 없는 주제.​

정보라 작가님은 광장 경력자이시다. 세월호 때부터 광장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신 선배님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듣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권, 장애인권, 성소수자 인권, 이태원과 세월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광장에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책 초반에 성폭력 가해자 김기홍이 추모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점이 아쉽다. 아마 김기홍 사후에 공론화된 내용을 모르셨던 것 같다.)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문장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2017년에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세상이 조금 좋아질 줄 알았다. 노동자들이 고공농성도 하지 않고 일하다 죽지도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순진했다.” – <아무튼, 데모> 중

2025년은 어떨까. 왠지 데자뷰인 것 같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많은 것이 바뀌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상의 차별금지조항은 '성적 지향'을 차별 목록에서 제외하고 재발의 예정이라고 한다. 옵티컬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는 아직 땅을 밟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바꾸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책의 마무리를 따오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이 올 때까지, 투쟁.

나한테 이거 5.18 도서라고 거짓말 한 사람 나와. 물론 빨치산 얘기도 있고 사회운동 이야기도 있긴 한데, 5.18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대신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주인공 아버지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책에 쓰인 말 그대로,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진보주의자라면 '빨갱이' 공명효과로 애틋함 2배를 얻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내게 잘해주시던 모 정당의 지역위원장님, 아버지 정당 따라 입당한 당원분도 생각났다. 그때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격동의 시기를 겪... 겪고는 있지만(12.3 비상계엄...) 여튼 지금도 전국에 있는 수많은 '아버지'들이 사람들의 인생에 스쳐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잘못 고른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니 더욱 마음에 들어진 책이다.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아버지의 생애를 풀어가고 있다. 27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어서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추천합니다.

처음에는 이 소설을 퀴어 소설으로 접했다. 그런데 등장인물만 퀴어한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존재 자체가 퀴어하다고 해야 하나 싶다. 기반이 되는 배경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폭력적인 미군정 사회이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여성들의 상호작용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역사 속 퀴어라고 한다면 모두들 외국의 퀴어 퍼레이드나 스톤월 항쟁 같은 걸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국의 과거에도 퀴어들은 계속 존재해왔다. 그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미군정 사회에서의 여성/퀴어 등장인물들은 분명히 차별을 받지만, 미래를 낙관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과거가 아닌가 싶다.

책에서는 에이섹슈얼,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스포일러) 등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정체성을 다양하게 다루었다는 것도 가산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포일러)가 궁금하다면, 꼭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한 미군정과 여성 인권, 퀴어 인권을 다룬다는 점에서 꽤나 진보스러운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덕분에 읽으면서도 즐거웠던 것 같다. 이런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무리!

완전히 알 수 없어도 기억하는 자세

겨울학기 문학팀에서 분명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것 같은데, 나는 멘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었나. 아무튼 한강 작가님 책은 감정을 세게 건드리는 면이 있어서 미뤄두었었다. 사실 괜히 '유행 따라가는 사람' 될까 봐 조금 미뤄둔 것도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요새 자꾸 동아리방에 사둔 <소년이 온다> 두 권이 눈에 밟혔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조만간 5.18 기행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정말 미룰 수 없었다. 그냥 부딪혀보자 하는 생각에 일단은 책을 펼쳐보았다.

제일 먼저 든 감상은 12월 3일의 비상계엄이 실패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너무나 부끄러웠는데, 5.18 당시의 열사분들을 보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며 타자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 기반 문학이라는 것은 논란에 빠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참상의 현장을 강하게 묘사했음에도 그 수위와 관련된 논란은 일절 없었다. 그 뜻은 실제 현장이 이것보다 훨씬 참혹했을 거라는 말 아닐까. 결국 우리는 책 한 권으로 그때의 참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알 수 없어도 기억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책에 묘사된 것 이외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그때의 정신을 깊이 새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나도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이 책을 펼쳐본 것이다. 유행 따라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책을 모두가 한 번씩은 펼쳐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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