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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naturally

이 연구실에 오기 전, 두 개의 다른 연구실을 거쳤습니다. 두 연구실 모두 대형 랩이었고 학부 인턴에게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면 방학이 끝나 있었죠. 늘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랩에서는 학부생이 혼자 실험하는 게 허용되었습니다. 보통의 랩에서는 학부생은 못 믿겠다며 늘 조교를 붙여주시거든요. 사실 그게 맞는 것 같지만, 어쨌든 저는 이번 랩 분위기가 더 자유로워서 좋습니다. 또, 랩미팅에서 저널을 발표하라는 숙제도 내주셨죠. 그 흔하디 흔한 저널 클럽을 왜 지난 연구실에서는 하지 않았던 걸까요. 역시 대형 랩실이어서 학부생에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던 걸까요.

아무튼, 꽤 오랜만에 꼼꼼히 논문을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점, 의문점을 조사하다 보니 파고들 게 산더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랩에서 조금 더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덕분에 이번 졸업년도에 인턴으로 있는 건 거의 확정이에요. 거기 더해 교수님께 슬쩍 대학원 진학해도 되는지 떠보았는데 넘어가셨어요! 교수님 기다리시지요 제가 가겠습니다.

사실 연구실은 오랫동안 꿈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그때는 물리를 하고 싶어했는데, 고등학교 때 보니까 수학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화학을 택했습니다. 대학 입시가 끝나갈 무렵에는 대학원을 보고 대학을 고르기도 했죠. 친구들이 왜 화학공학과가 아닌 화학과를 택했는지 저에게 가끔 물어보면, 대학원 가고 싶어서라고 대답해줍니다. 그럼 친구들은 농담인 줄 알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진짜입니다. 대학원 가려고 화학과 갔습니다.

대학을 선택할 때 저를 만류한 분이 있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화학 선생님이었어요. 그분께서는 제가 대학원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생각하는 것보다 힘들 거라고, 그냥 서울권 대학에 가서 취직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경험담인 것 같았어요. 선생님 말은 고분고분 잘 듣는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예외였습니다. 아마 이렇게 대답했었을 겁니다. “이미 다른 데 입금했는데요?”

글쎄요, 그 선생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실 생활은 어렵고 힘들죠. 사람들끼리 안 맞으면 더욱 힘들고, 일이 많은 것도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를 반복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애초에 대학원생 밈들이 왜 생겼겠어요. 오죽하면~ 의 모임 아니겠어요?

그래도 저는 대학원 진학을 마음먹은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적성에 그나마 맞는다는 것도 있지만, 오랜 꿈이었으니까요. 관성적인 게 꼭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걸 오래 붙들고 있을 이유가 이미 저에게 있다는 뜻이니까요! 모쪼록 앞으로도 지금의 텐션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야겠네요.

내일이 랩미팅이네요. 이제 이만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첫 WriteFreely 글이네요. 앞으로 애용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