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사랑했던

네가 사랑했던

~19화

지인의 글이다. 내가 쓴 너무하기 짝이 없는 감상글을 보고도 감상문을 써달라고 하기에 쓴다.

좋은 소리만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첫 작품이 그렇듯 쓴 사람이 투명하게 보이는 좋은 글이다. 그게 왜 좋은 글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첫 작품에 쏟아내고 나야지만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 없이는 어떤 작가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글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별 5개 중에 3개 정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첫 작품이고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좋은 작품이나 아직은 손댈 곳이 많다. 제대로 된 전체 퇴고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전에,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뭐, 완결 내고 퇴고하면 다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긴 하다. 전반적으로 읽기 쉽고 걸리는 부분 없이 읽히는 게 장점이나 단점이기도 하다. 화자인 현서는 평범한 시골 소시민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의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는 평온하기만 하다. 눈 앞에서 대형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멀리서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카메라 마냥 상황을 해설할 뿐이다. 현서의 캐릭터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드러날 때 뿐인데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화자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이 부분은 뒤로 갈수록 심해진다. 작품 밖 이야기지만, 글쓴이에게 듣기로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고 했는데 이게 안 그래도 평이하기만 한 서술과 묘사를 더 강화시킨다. 심지어 지금까지 나온 원고에서 가장 본격 액션씬이 들어있는데도 박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서술의 문제는 독자를 붙들어놓지 못 한다는 점이다.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 걸으려면 바닥에 최소한의 마찰력이 필요한데 이 작품은 자꾸만 미끄러진다. 너무하게 말하면 문장이 작품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서술력은 여기서만 장애가 아니다. 일상 장면에 적합한 문장인 탓인지 이상 현상이 일어날 때 급격하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나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일상과 비일상의 전환 부분. 문장은 평이하고 화자는 감흥이 없으니 독자 입장에서 갑자기 이게 이렇게 튀어나와? 싶어진다. 장르를 분류하면 남성향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니 문피아에 둥지를 튼 건 좋은데 작품에 적합한 목소리를 갖추지 못 했다. 문체는 순문학 중에서도 특히나 자전적인 부류에 어울리는데 거기에 쿵쾅거리는 판타지를 입혀놓으니 여린 목소리의 발라드 보컬에게 리드미컬한 배경음을 깔아준 느낌이 난다. 여러모로 문장력이 아쉬운 작품. 내용 전개나 템포, 전반적인 캐릭터가 무난하게 조화로운데 문장이 이걸 죽이는 경우는 처음 봐서 정말 아쉽다. 문장은 당장 고칠 수는 없는 문제라 작가가 비슷한 장르를 읽어봤으면 한다.

#바람의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