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사랑하고, 무서워하고, 다시 쓰기
우연한 기회로 학생자치를 했던 과거를 다시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단과대 학생회, 총학과 총동연에서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많은 활동을 했었다. 단과대 비대위장으로, 총학과 총동연에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총동연에서 재정감사위원장으로 활동했고, 단과대와 총동연의 회칙개정위원회에도 있었다. 최근에는 총동연 회장단 선거에서 선거운동본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말 사람이 없는 탓에 학생자치에서 출마 빼고 다 해봤다.
막상 내가 학생자치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당연히 학우들과의 소통이었다. 단과대 비대위장으로 인준되었을 때, 단과대 학생들이 많은 동아리에서 아이디어를 듣기도 했고, 직접 학우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려다가 학과 대표들이 반발하기도 했었다. ‘요즘 학생회’의 대표적 행사인 간식행사도 최대한 소통 통로로 이용하려고 의견 폼을 작성하면 쿠키를 나누어주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작은 실천이지만, 그리고 고작 비대위였지만, 나는 이런 가치로 단체를 운영했다는 것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놀랐다. 나는 회칙 준수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보수의 가치인 ‘질서’를 수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세칙을 어겼을 때 자발적으로 사과문을 작성했고, 권력을 가진 학우가 회칙을 어겼을 때 진심으로 화를 냈다. 스스로 약간은 급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스로를 들여다보니 많이 당혹스러웠다.
더 웃긴 것은, 학칙이나 법을 그렇게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우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면 학칙은 얼마든지 어겨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걸 어김으로써 받는 징계가 훈장이라면서. 법은 아직 감이 잘 오진 않지만, 기존 질서가 사회적 약자를 탄압한다면 ‘불법으로 투쟁’해도 된다 여겼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왜 회칙은 수호해야 할 가치였고, 학칙이나 법은 투쟁 대상이었을까.
의외로, 나의 학생자치 약력에서 답이 나왔다. 나는 학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단과대 회칙개정위원회와 총동연 회칙개정위원회에 소속된 경력이 있다. 회칙을 더 낫게 고치고자 하면 언제든지 발의를 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학부 총학생회칙은 그렇게 쉽게 수정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중앙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는 전학대회로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만일 내가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학우였다면 회칙 개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총학생회 회세칙을 생각하면, 본회 회원 1/10의 서명을 받아야 전학대회로 발의가 가능하다. 1/10은 학부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하려 할 때 온 선본부원이 받아야 하는 서명 수다. 대의를 위임받지 않은 사람이,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권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회칙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칙은 내가 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에 반항했다. 회칙은 내가 바꾸는 게 가능해 보여서 순응했다. 이것이 사실 기득권의 나이브함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대의를 위임받아 권력을 가지는 순간 정말로 구조에 순응해버린 것 같다.
질서 수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수에게 불리한 질서가 있다면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자치회 선거시행세칙을 생각하면, 신중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던 만큼 되도록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걱정하는 건, 어느 순간부터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질서만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부분에서다. 물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어쩔 때는 스스로에게 족쇄를 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나에게 유리한 질서만을 지키거나 새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 상태’였다는 것이 찜찜하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동아리연합회의 총학 독립을 돕기 위해 단과대 비대위장으로 인준받았다. 겸사겸사 단과대 학생회 비대위를 살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총동연이 단과대에 주는 이득은 없었다.)
학생자치를 그만둔 다음에도 계속 이러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사회운동을 시작한 지금, 이런 감정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기존 질서에 대해 성찰하고 투쟁하고 반항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회칙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기만 했던 과거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나는 회칙을 사랑하기보다 회칙에 압박을 느꼈어야 한다. 학우들이 회칙 미준수로 나를 공격하거나, 회칙을 바꾸어달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갔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우들이 조금이라도 탄압받고 있는 규칙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쳤어야 했다.
문득 집회 및 시위의 자유도, 출판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은 우리 학칙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집회는 신고제가 아니라 승인제이기 때문에, 비상계엄 당시 시국선언을 위해 중앙비대위장은 공문을 통해 학생처장으로부터 집회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이런 규칙은 대학본부의 편의를 봐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득권의 편의를 위해 작동하는 질서라면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 신념을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권력을 가지게 될 일은 정말 없다고 생각하지만, 작은 직책일지라도 다시 질서를 해석할 수 있는 위치를 갖게 된다면, 나는 그 질서를 지키는 사람보다는 질서로부터 의심받는 사람,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게 질서를 고쳐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