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 후기
인생 두 번째 서퀴인데 부스러가 되었다. 부스 안쪽이 훨씬 더운데도 처박혀있는 것이 나았다. 밖은 인파로 넘치고 굿즈 영업 소리가 째질 듯이 들렸다. 사람이 무서울 시기는 지났지만 어쨌든 바글거리는 서울에 적응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상대적으로 한적하던 대전 퀴퍼가 떠올라 더 움츠러들었다. 아, 난 서울이 너무 힘들다. 정말 힘들다.
솔직히 저 한 문단이 서퀴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는 한다. 그래도 후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이상, 인파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릿속에 담아놓은 걸 얘기해야겠다.
자본주의 퀴퍼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 싶다. 서퀴에 가면 온갖 후원리워드를 파는 부스들이 많다. 간혹 대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도 흔하다. 퀴퍼의 자본화가 우려된다는 말도 상당할 정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축제가 시장바닥이 되어 운동성을 잃어간다는 것. 하나는 대형 자본의 개입으로 퀴퍼의 본질이 손상되는 것.
후원리워드에 대해 해명을 하자면, 소규모 퀴어 운동 단체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퀴어 단체들은 후원과 기금으로 굴러간다. 서울퀴퍼는 가장 많은 사람이 오는 퀴퍼이며 후원금을 쌓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어쩔 수 없다. 굿즈를 팔아서 후원금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종할지도 모르니까. 더러운 세상에서는 돈이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기왕이면 단체들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후자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간혹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국의 퀴퍼가 기업과 상업화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시선들이 눈에 띈다. 기업 로고에 무지개를 입히고 퀴어 상품들을 판매하지만, 정작 인권 개선에는 소극적인 그런 퀴퍼. 거대 자본기업의 핑크워싱이 판치는 것은 정말로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퀴퍼'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질까 걱정이 된다. 결국 대응 방식이 소비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퀴퍼의 자본화가 걱정된다면, 직접 참여로 퀴퍼의 운동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어떨까 싶다. 교차적인 의제에 대한 몸자보를 입고 간다든지, 행진에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선다든지, 혹은 조직위에 뛰어든다든지.
아무튼 모쪼록 대한민국의 퀴퍼가 운동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퀴퍼가 안전하고 예쁜 공간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퀴어퍼레이드' 하면 자동으로 서울만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퀴를 아예 퀴퍼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지역의 퀴어퍼레이드에도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방에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여기에도 퀴어 살아요.
서울퀴퍼에서 받은 스티커들을 정리하고, 후기를 쓰려고 하니까 있는 사진이 거의 없더라. 사람 얼굴이 안 나오게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까, 유일한 사진이 진보당 현수막밖에 없다. 다음 서퀴 전에는 발의가 되어서 통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내정당이니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