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학기 문학팀에서 분명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것 같은데, 나는 멘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었나. 아무튼 한강 작가님 책은 감정을 세게 건드리는 면이 있어서 미뤄두었었다. 사실 괜히 '유행 따라가는 사람' 될까 봐 조금 미뤄둔 것도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요새 자꾸 동아리방에 사둔 <소년이 온다> 두 권이 눈에 밟혔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조만간 5.18 기행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정말 미룰 수 없었다. 그냥 부딪혀보자 하는 생각에 일단은 책을 펼쳐보았다.
제일 먼저 든 감상은 12월 3일의 비상계엄이 실패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너무나 부끄러웠는데, 5.18 당시의 열사분들을 보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며 타자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 기반 문학이라는 것은 논란에 빠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참상의 현장을 강하게 묘사했음에도 그 수위와 관련된 논란은 일절 없었다. 그 뜻은 실제 현장이 이것보다 훨씬 참혹했을 거라는 말 아닐까. 결국 우리는 책 한 권으로 그때의 참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알 수 없어도 기억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책에 묘사된 것 이외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그때의 정신을 깊이 새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나도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이 책을 펼쳐본 것이다. 유행 따라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책을 모두가 한 번씩은 펼쳐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책이다.
12월 3일의 비상계엄 이후, 우리 학부 총학생회는 중앙운영위원회를 거쳐 비상학생총회를 소집했다. 나도 중운위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비상학생총회의 스태프로 일하게 되었다. 그때 친구가 나에게 당부하던 말이 있었다.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대피로를 확보해두어라.” 물론 우리는 그렇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비상학생총회에서 친구가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사히 총회가 개의되었고 공동 시국선언은 가결되었다.
생각해보면, 케이팝 음악에 맞추어 응원봉을 휘두를 수 있는 집회는 흔하지 않다. 나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사람들이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사람들은 다양한 집회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한 투쟁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최후의 수단임에도 그 수가 많은 고공농성, 구사대를 동원한 폭력이 가해진 시위, ‘불법 시위’로 공공기관에 프레이밍 당한 집회들. 그리고 내가 미처 몰랐기 때문에, 혹은 SNS에서 이슈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나열한 수많은 투쟁.
<초혼, 다시 부르는 노래>는 투쟁에서의 결연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우리는 왜 비상학생총회의 개회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했는가. 과거에 빗대어 보았을 때 공권력이 총회를 습격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왜 원내 공동 시국선언은 생중계되었는가. 역시나 같은 이유에서다. 투쟁에는 누군가의 목숨이 달려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투쟁하지 않으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투쟁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투쟁해야 하는가.
물론 모두가 투쟁의 의지를 갖고 발을 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인 민영이 얼떨결에 노래패에게 가입하고, 폭력 진압되고 있는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부분이었다. 비판할 지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개연성 부족이 의도되었다고 느꼈다. 투쟁을 시작하는 것은 사람 마음에 달렸다. 마음이란 예측 불가한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별일 아닌 계기로 투쟁에 발을 들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들은 많다. 현재의 ‘탈정치’ 총학생회들에 비교되는 학생운동 중심의 총학생회, 종교인의 올바른 마음가짐 같은 것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 말하라면 노래로 모든 것을 바꾸는 전개가 아쉬웠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그것들은 ‘투쟁의 결연함’이라는 주제에 비교하면 별거 아니었다. 영화를 보기를 잘했다. 많이 반성했다. 앞으로는 정말 진지한 마음가짐과 각오로 투쟁과 연대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