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글이다.
내가 쓴 너무하기 짝이 없는 감상글을 보고도 감상문을 써달라고 하기에 쓴다.
좋은 소리만 하지는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모든 첫 작품이 그렇듯 쓴 사람이 투명하게 보이는 좋은 글이다. 그게 왜 좋은 글이냐고 물으면, 그렇게 첫 작품에 쏟아내고 나야지만 다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 없이는 어떤 작가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글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별 5개 중에 3개 정도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첫 작품이고 아마추어의 작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좋은 작품이나 아직은 손댈 곳이 많다. 제대로 된 전체 퇴고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 이전에,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뭐, 완결 내고 퇴고하면 다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긴 하다.
전반적으로 읽기 쉽고 걸리는 부분 없이 읽히는 게 장점이나 단점이기도 하다. 화자인 현서는 평범한 시골 소시민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의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는 평온하기만 하다. 눈 앞에서 대형 이상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멀리서 찍고 있는 다큐멘터리 카메라 마냥 상황을 해설할 뿐이다. 현서의 캐릭터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드러날 때 뿐인데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화자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이 부분은 뒤로 갈수록 심해진다. 작품 밖 이야기지만, 글쓴이에게 듣기로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다고 했는데 이게 안 그래도 평이하기만 한 서술과 묘사를 더 강화시킨다. 심지어 지금까지 나온 원고에서 가장 본격 액션씬이 들어있는데도 박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서술의 문제는 독자를 붙들어놓지 못 한다는 점이다.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 걸으려면 바닥에 최소한의 마찰력이 필요한데 이 작품은 자꾸만 미끄러진다. 너무하게 말하면 문장이 작품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서술력은 여기서만 장애가 아니다. 일상 장면에 적합한 문장인 탓인지 이상 현상이 일어날 때 급격하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특히나 강하게 느껴지는 건 일상과 비일상의 전환 부분. 문장은 평이하고 화자는 감흥이 없으니 독자 입장에서 갑자기 이게 이렇게 튀어나와? 싶어진다.
장르를 분류하면 남성향 판타지에 가까운 작품이니 문피아에 둥지를 튼 건 좋은데 작품에 적합한 목소리를 갖추지 못 했다. 문체는 순문학 중에서도 특히나 자전적인 부류에 어울리는데 거기에 쿵쾅거리는 판타지를 입혀놓으니 여린 목소리의 발라드 보컬에게 리드미컬한 배경음을 깔아준 느낌이 난다.
여러모로 문장력이 아쉬운 작품. 내용 전개나 템포, 전반적인 캐릭터가 무난하게 조화로운데 문장이 이걸 죽이는 경우는 처음 봐서 정말 아쉽다. 문장은 당장 고칠 수는 없는 문제라 작가가 비슷한 장르를 읽어봤으면 한다.
두락님이 일년은 더 전에 빌려준 것 같다. 날이 추울 때 빌렸는지 더울 때 빌렸는지조차 생각이 안 난다. 이걸 이제사 읽었다.
좋은 책이어서 짧게나마 감상을 남겨두기로 한다.
왜 사람들은 우주를 항해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꿈꿀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옆집의 영희씨> 2부 카두케우스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따뜻하고,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다.
켄 리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신체에서 벗어나는 단편이 있었다. (도약) 내 취향은 켄 리우의 방식이지만 이것도 무척 인상적이고 좋았다.
뻔한 소재를 찌르르하게 쓴 책이다. 정소연이라는 이름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일단 책을 살 예정이니까.
레즈비언이 정말 많이 나온다. 이건 한동안 유행한 퀴어 문학 열풍 때문일까 정소연 작가의 마음이 이끈 결과일까? 작가가 레즈비언일 거란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유행에 올라탄 것인지 이유가 있는지가 궁금한 거다.
작가의 말이 좋았다. 위로하기 위해서 책을 쓴다는 말이 특히 좋았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들이 따뜻하구나 싶었다. 아주 작은 이야기들을 아주 느리게 쓰는 작가라는 말도 좋았다. 내가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그 말에 위로를 받았다. 언젠가는 나도 나만의 책을 가질 수 있게 되겠지.
나는 한국 SF 문단에 불만이 많은 사람인데 역시 그래도 풀이 있으면 좋은 작가가 따라오는가보다. 조금 부럽기도 하고, 나도 써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판타지와 SF는 이웃사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