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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e we became

퀴어 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 친구들이 질문을 합니다. 자신은 2D 캐릭터를 사랑하는데 왜 성소수자로 인정받지 못하냐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혐오자들의 레파토리인 줄 알았는데, 더 이야기해보니 순수하게 궁금해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퀴어라는 것은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랑은 기본적으로 퀴어하나 사회에서는 2D 캐릭터를 향한 사랑을 성소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고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이 대답은 ‘정체성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가정이 깔린 질문이었습니다. 정체성 정치에는 분명히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가르고, 결국에는 ‘당사자’들만 살아남는 구조이죠. 탈락한 당사자들은 당사자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디지털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범위를 줄이고 축소시켜 기혼자 여성, 트랜스여성, 퀴어 여성들의 연대를 수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쁜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에 강력한 점 또한 있습니다. 강한 단결을 만들어 사회적 가시화를 이루어내는 것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나는 퀴어이다, 나는 퀴어인 것이 자랑스럽다, 라고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라면 정체성이 본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태어나기를 레즈비언으로 태어났다, 와 같은 것이죠. 그래야 고정된 정체성이 타협 불가능한 본질임을 강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치료는 무용지물이자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정체성이 고정되어있다는 말은 퀴어 이론과는 어긋나 보입니다. 정체성이란 것은 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인데, 정체성 정치는 본질주의를 추구하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시 말해 전략적으로 본질주의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퀴어 이론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강요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퀴어 운동에서의 정체성 정치가 유효한 것과 별개로, 위험한 점이 많습니다. ‘진짜 퀴어’가 아니라고 배제당하는 퀴어들이죠. 예를 들어 무성애자가 받는 억압이 가짜라고 주장하거나, 이성을 사귀는 바이섹슈얼들에게 사실은 이성애자 아니었냐고 묻는 등의 일입니다. 정체성 정치를 무기로 쓰려면, 그 무기가 본인을 찌르지 않는지 보아야 합니다. 퀴어 운동을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방향성을 성찰하고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흐름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비당사자의 배척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지털 래디컬 페미니즘은 자주 남성의 여성의제 연대를 거부하고는 합니다. 이것 또한 정체성 정치의 어두운 면입니다. 그렇다면 퀴어 운동의 정체성 정치에서도 유사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퀴어는 아니지만 연대하고 싶은 사람은 정체성 정치의 현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럴 때 앨라이라는 이름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자들에게도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서 일종의 ‘같은 편’으로 포섭하고, 연대자에게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환대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연대자가 의제에서 ‘비당사자’로 남지 않게 되죠.

정체성 정치에는 분명 위험이 따릅니다.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외부로 내보일 때 강력하고, 가끔은 이 정치적 언어를 계속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커뮤니티 내부를 점검하고, ‘앨라이’라는 연대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해 타인을 환대해줄 수 있다면, 퀴어 운동이 조금은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세이

“지하철이 안 오는 것 같지 않냐.” 장애인영화제에 난입한 모 밴드의 혐오적 발언 중 하나이다.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 탑승이 지연된 건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탑승이 시위가 된다'는 문장에서 모순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공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도 말했다는 점이다. 퀴어한 장애인, 장애를 가진 퀴어들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걸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이들은 혐오를 교차적으로 행함으로써 인권이 교차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근거를 주었다.

이 책은 장애인과 장애 인권에 대한 에세이 30여 편을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장애와 인종차별, 성소수자 인권, 성적 자기결정권 등이 어떻게 교차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이것도 장애였다고?' 싶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장애가 하나의 정의로 수렴되지 않음을 뒷받침한다. 장애와 연관된 의제는 수도 없이 많으며, 이 책은 저자들의 경험을 통해 그 내용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중 20%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장애인권도 역시 가시화의 문제인가. 관련해서 어떤 후배가 특이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으니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인이 없을 리 없다. 보이지 않는다면 왜 보이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타당하다. 그리고 장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가시화해야 한다. 또 첨언하자면 대부분의 '특혜'들은 어퍼머티브 액션조차 되지 않는,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권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더라도 장애인권의 신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실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혐오발언을 하고 살았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이런 장애인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 더 많이 출판되고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미국 정권은 트럼프가 쥐고 있다.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 이 책처럼 진보적인 프로젝트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독자적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후감

어쩌다 보니 독서모임에서 읽게 된 책.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 없이 본문만 읽었다.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은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던 걸까 생각했다. 심지어 초반 부분을 읽었을 때는 억압된 여성의 욕망과 그 분출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해서 따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자연주의 소설이 어떤 것이고 하니, 낭만주의에 반대되는 문학사조라고 한다. 환경이나 유전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문학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애정 없는 결혼, 음침한 공간, 병약한 남편이 테레즈의 신경질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만든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테레즈와 로랑 사이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육체적 충동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이 아닌 그들의 업보인 것이다.

문학사조나 고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자연주의가 인간의 잔혹성을 묘사하게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 같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는 세상이 생각보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도 아픈 아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자연주의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일지 몰라도, 실제 인간은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다고 믿고 싶다.

#독후감

작가 본인의 데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저주토끼>나 <너의 유토피아>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건너뛰고 <아무튼, 데모>부터 읽게 되었다. 아무튼, OO라는 시리즈의 한 작품인데, 정말 많은 주제들이 있다. 디지몬, SF게임, 서재, 망원동... 그 사이에서 홀로 빨간 표지로 데모. 라고 적혀있는 게 기억에 남았다. 데모. 읽어볼 수밖에 없는 주제.​

정보라 작가님은 광장 경력자이시다. 세월호 때부터 광장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신 선배님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듣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권, 장애인권, 성소수자 인권, 이태원과 세월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광장에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책 초반에 성폭력 가해자 김기홍이 추모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점이 아쉽다. 아마 김기홍 사후에 공론화된 내용을 모르셨던 것 같다.)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문장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2017년에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세상이 조금 좋아질 줄 알았다. 노동자들이 고공농성도 하지 않고 일하다 죽지도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순진했다.” – <아무튼, 데모> 중

2025년은 어떨까. 왠지 데자뷰인 것 같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많은 것이 바뀌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상의 차별금지조항은 '성적 지향'을 차별 목록에서 제외하고 재발의 예정이라고 한다. 옵티컬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는 아직 땅을 밟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바꾸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책의 마무리를 따오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이 올 때까지, 투쟁.

#독후감

인생의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인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신나게 잘 다녀왔다. 온갖 스티커들이 생겼는데 조만간 일기장에 붙일 예정이다.

연대발언이 제일 가슴 뛰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탄핵 광장과 대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담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대선(6/3) 직후가 축제(6/7) 날이더라. 수어 통역 때문에 대선 전에 미리 스크립트를 보내야 했다. 1번이 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같은 걸 보낼 수 있었겠지만, 만일 2번이 된다면 차별금지법을 얘기할 정신이 아닐 것 같아서, 대선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그 경우였다면 인권 광장이 탄핵광장이 될 게 뻔했던 것 같다.

1분짜리 연대발언치고는 상당히 무거운 내용이 담겼다.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치와, 그 외의 잊힌 수많은 죽음들 이야기를 했다. 대전퀴어문화축제가 6월 7일로 예정된 이유 중 하나는, 그날이 현충일 다음날이기 때문이었다. 6월 6일에 현충원에 안치된 변희수 하사 추모식 또한 있어서 연대발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탄핵광장과 위헌적 비상계엄 이야기를 하더라. 서울에서는 아트하우스 모모의 퀴어영화제 대관 거부 이야기를 했고. 그래도 준비한 발언이 다른 발언들과는 달라서 좋았던 것 같다.

연대발언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이나 동물권, 장애인 인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사실 퀴어퍼레이드에서 발언을 유심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더해, 이번 축제에는 옵티칼 국회 청문회 개최 청원 몸자보를 붙이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우리는 노동인권과도 연대할 수 있으니까. 인권운동은 결코 혼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인생의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라고는 하지만, 퍼레이드 즉 행진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알다시피 이미 광장 짬은 차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행진하고 왔다. 다른 분이랑 “여기에서는 빨갱이 소리 안 들어서 좋다” 같은 실없는 소리도 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연대의 의미로 창문 밖으로 무지개 깃발을 걸어주셨다. 덕분에 행진도 어떠한 충돌이나 무리 없이 신나게 마치고 온 것 같다.

이번 축제는 혐오세력과의 충돌이 거의 없었는데, 행진할 때 보니 경찰이 엄청나게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옆에서 맞불집회도 했다고 들었는데 부스에만 있어서 몰랐다. 오늘만큼은 혐오세력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얼마 전 민주당이 발의한 정보통신망상의 차별금지조항이 많은 반대를 받았고, 민주당에서 ‘차별금지 목록에서 성적 지향을 빼고 재발의’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점을 명확히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일주일 후인 6월 14일은 서울퀴어퍼레이드이다. 그 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겠지. 말 그대로 연대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세이

5.18 기행을 다녀오고 나서 사진 몇 장이 남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5.18의 현장에 다녀왔었다고? 그만큼 현장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전일빌딩에 남아있던 총탄 흔적이며, 묘역에 안치되었던 수많은 열사분들도.

이번 5.18 기행은 당일치기였다. 내심 전야제에도 참석하고 싶었기 떄문에 당일치기인 게 아쉬웠다. 이번 스케줄은 전일빌딩과 기록관에 갔다가 5.18 묘역에 가는 것이었다. 근처 YMCA 건물이었던 곳에서 든든하게 김치찌개를 먹고 출발했다.

전일빌딩이 왜 전일빌딩인가 했더니 전남일보 빌딩의 약자였다. 전일빌딩에서는 실제로 남아있는 헬기 사격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시민한테 총을 쏜 것도 모자라서 헬기를 띄워 전남일보 빌딩에 쏘았다고 한다. 기둥 하나에 몇십 개의 총알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목격자도 많았고. 그런데 아직도 전두환 세력은 헬기 사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일빌딩의 전망대에서는 5.18 당시 17일에 사람들이 연설을 했던 분수대도 볼 수 있었다. 전 전남도청 앞에 분수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 때에도 연설을 했다고 한다. 역사가 이어지는 순간이구나 싶었다.

같이 기행을 간 후배가 나한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전일빌딩 앞에서 시계탑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앞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국힘 대선후보인 김문수의 현수막이었다. 12.3 비상계엄 당시 협력했던 그들 말이다. 이제 와서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지만, 계엄은 잘못되었으니 사과한다’라고 말해봤자 뭐하나. 우리는 정말 아직도 내란 세력들을 뿌리뽑지 못하고 있다.

이후 스케줄은 5.18 국립 묘역이었다. 묘역에 가면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유령 같은 건 안 믿는다며 씩씩하게 다녀올 것을 맹세했는데, 후반부에 깨지고야 말았다. 투쟁하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울 것 같이 거의 압도당하는 기분으로 신묘역을 돌아다녔다.

열사분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민중항쟁의 두 열사를 기리기 위한 곡이라는 것이 기억난다. 퇴진 집회에서 들었던 노래가 5.18을 기리기 위한 노래였고, 즉 5.18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국립묘역에서 다짐을 정말 많이 했다. 그때 돌아가신 열사분들의 정신을 이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듯,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죽은 자가 오늘의 산 자를 살렸듯이, 오늘의 투쟁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기행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대선 토론회를 봤다. 거기에서 정말 다양한 헛소리를 접한 것 같다. 제일 황당했던 건 누군지 모를 보수 후보의 ‘거기는 반미 아닙니까?’ 언급. 그런 말들을 참으며 꾸역꾸역 토론회를 봤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랬다. 조금이라도 행동하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것. 그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도 5.18마다 광주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일기 #에세이

나한테 이거 5.18 도서라고 거짓말 한 사람 나와. 물론 빨치산 얘기도 있고 사회운동 이야기도 있긴 한데, 5.18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대신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주인공 아버지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책에 쓰인 말 그대로,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다. 진보주의자라면 '빨갱이' 공명효과로 애틋함 2배를 얻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내게 잘해주시던 모 정당의 지역위원장님, 아버지 정당 따라 입당한 당원분도 생각났다. 그때처럼 한국의 민주주의가 격동의 시기를 겪... 겪고는 있지만(12.3 비상계엄...) 여튼 지금도 전국에 있는 수많은 '아버지'들이 사람들의 인생에 스쳐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잘못 고른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읽고 나니 더욱 마음에 들어진 책이다.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아버지의 생애를 풀어가고 있다. 27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되어서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추천합니다.

#독후감

처음에는 이 소설을 퀴어 소설으로 접했다. 그런데 등장인물만 퀴어한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의 존재 자체가 퀴어하다고 해야 하나 싶다. 기반이 되는 배경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폭력적인 미군정 사회이다. 그 사이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여성들의 상호작용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역사 속 퀴어라고 한다면 모두들 외국의 퀴어 퍼레이드나 스톤월 항쟁 같은 걸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국의 과거에도 퀴어들은 계속 존재해왔다. 그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미군정 사회에서의 여성/퀴어 등장인물들은 분명히 차별을 받지만, 미래를 낙관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과거가 아닌가 싶다.

책에서는 에이섹슈얼,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스포일러) 등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정체성을 다양하게 다루었다는 것도 가산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포일러)가 궁금하다면, 꼭 책을 구매해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다른 말이지만,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한 미군정과 여성 인권, 퀴어 인권을 다룬다는 점에서 꽤나 진보스러운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해서 덕분에 읽으면서도 즐거웠던 것 같다. 이런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무리!

#독후감

부제: 어느 퀴퍼에서 생긴 일

하경은 실내에서 나오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경찰 버스가 도로가에 서 있었다. 하경이 바라보는 쪽에도, 그 반대편에도. 시끄러운 북소리와 와글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머리에 가득 찼다. 하경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중 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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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하실. 불이 꺼져있어 벽에 붙어 있는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위층도 조용하다. 교회 의자가 양쪽으로 길게 깔려 있고, 맨 끝쪽에 작은 탁자가 있다. 거기에 한 사람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청년부 하경은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인다. 바지 주머니에는 새신자 접수증 뭉텅이가 들어 있다. 아직 작성되지 않은 새것이다. 길거리에서 혹여나 새 가족을 만날까 갖고 있던 것이다. 물티슈와 전단지도 함께 들어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동성애 조장하는 차별금지법 반대한다’. 날씨가 슬슬 더워지지만 하경은 정장에 구두를 입는 것을 잊지 않았다.

텅 빈 지하실에 발소리가 울렸다. 하경은 탁자에 가까이 다가가, 남자의 반대편에 앉는다.

“저, 목사님. 오늘은 무얼 위해 불렀죠?”

“그게 말이다.”

평소와는 다른, 낮고 짙게 깔린 목소리였다. 목사는 한숨을 쉬며 안경을 벗었다. 순간 목사의 몸이 반짝 하고 빛나더니 다시 사그라들었다. 목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말했다.

“아오, 이거 쉽지 않네. 빙의 당해주는 것도 어렵구먼.”

“빙의라고요? 그런 게 성경에 나오던가요?”

목사가 안경을 하경에게 건네주었다. 하경은 안경을 요리조리 살펴보기도 하고, 한번 써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 사이 목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물론 나오지. 다만, 악한 영이 아니라 선한 영에도 빙의될 수 있다는 것. 그걸 내가 발견했어.”

“그렇지만, 그런 게 과학적으로 가능해요?”

“과학을 전부 믿는 거니?”

날카로운 목사의 질문에 하경은 입을 다물었다. 아마 진화론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렇군요. 그런데 선한 영에 빙의해서 뭐하게요?”

“간단해. 복음을 전파하면 되는 거야.”

목사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안경의 이름이 뭔지 아니? 베드로. 예수님의 성실한 신자였지.”

“아, 그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다던….”

“그래. 그 경험은 베드로밖에 한 적 없어. 나도 베드로가 그때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 예측할 수 없지. 하지만 이 안경을 쓰면, 베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어. 더불어 그때의 경험도 생생하게 전해져오지. 그러면 무엇이 가능할까?”

“어…. 그러게요.”

“생생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해.”

목사는 안경을 고이 접어 안경집에 집어넣었다. 하경은 목사를 경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설교를 하기 직전에 안경을 낀다. 그러면 은혜가 내려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주신 그 은혜. 덕분에 나는 영광스럽게 설교를 하고, 신자 여러분들에게도 은혜를 전해줄 수 있어.”

“그렇군요….”

하경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부러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목사는 알고 있었다. 목사는 기다리는 질문이 있다는 듯이 먼저 하경에게 물었다.

“그럼 하경, 너는 바라는 게 있니?”

“뭐가요?”

“‘빙의’라는 현상을 알아버렸잖아.”

“아, 어, 음….”

하경은 망설이는 척 하다가 속에 담아둔 말로 대답했다.

“저도 베드로에게 빙의될 수 있나요?

“좋은 질문이야. 베드로는 이미 나와 연을 맺었어. 그러니 너에게 빙의되지 못하지. 역시 나도 다른 사람에게 빙의되지 못해.”

하경은 앞에 목사가 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리고 푹 실망했다. 목사는 어깨가 축 처진 하경에게 말했다.

“아, 아쉬워할 필요 없어. 내가 아주 특별한 빙의기술을 만들어냈거든.”

“뭐죠?”

화색이 된 하경에게 목사는 속삭였다.

“예수에게 빙의되고 싶지 않니?”

“네?”

별안간 목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하경에게 말했다.

“대신 너에게 아주 특별한 임무를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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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은 연필꽂이에 꽂혀 있던 깃발을 뽑아들었다. 여섯 색깔의 무지개로 된 손바닥만 한 깃발이었다. 예진은 깃발을 위로 휘둘러도 보고, 모자에 꽂아보기도 했다. 최대한 화려한 옷으로 차려입고 싶었는데, 옷장에는 검은색 옷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검은색 옷을 입은 채로 예진은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의 최대 고민은 이거였다. 전 여자친구를 마주치면 어떡하지. 그 애도 소수자 인권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어쩌면 예진과 헤어지고 몰래 조직위원회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혹은 모든 걸 부정하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더 문제는, 예진은 내심 재결합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다시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시작부터 끝까지 집회 장소에 있는 수밖에.

그러려면 당당히 예비를 해야 했다. 예진은 500ml짜리 생수병을 세 개 가방에 넣었다가, 무거울 것 같다는 생각에 하나 뺐다. 그런데도 가방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무래도 보조배터리 때문인 것 같았다. 이 휴일에, 이 날씨에 지하철에 탔다가는 집회 장소까지 가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았다.

그래, 오늘은 몇 없는 축제 날이니까. 일단 이대로 가보자.

막상 예진이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건너편에서 북을 치는 사람들도, 본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도. 지방 집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여기에서 전 여자친구를 찾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았다.

에이, 그냥 꿈이었던 거야. 잊어버려!

예진은 본인이 한 줄기 희망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시작 부스부터 시작해서 한 곳 한 곳씩 둘러보았다. 스티커를 나눔받고, 뱃지를 샀다. 포스트잇에 미래의 꿈을 적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혼자 찍었다.

그래, 혼자서도 즐길 수 있어. 예진은 애써 떨쳐버리려 노력했다.

문득 어떤 사람이 예진의 팔을 잡았다.

“저, 저기요.”

목소리가 닮았어. 예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요.”

10대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전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예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라요.”

“아니, 그게 아니라 교회 건물이 한번 크게 일렁였어요. 그리고….”

그 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세게, 아홉 번. 그 리듬은 다음과 같았다.

· · · – – – · · ·

“주변에 도움을 청했나 봐요. 곧 혐오세력들이 몰려오지 않을까요?”

순식간에 장내가 혼란스러워졌다. 예진은 이 애가 떨고 있는 걸 못 본 체할 수 없었다.

“일단 지하철역으로 갑시다.”

예진과 그 학생은 인파 속에서 틈을 찾아 서둘러 을지로입구역으로 질주했다.

-

목사는 안경을 벗었다. 이제 곧 큰 파도가 올 것이다.

평범한 사람인 척 하고 인파에 섞여 있는 목사는 하경이 교회 건물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베드로에 빙의했을 때 그는 신도들이 감화된 것을 보았다. 예수가 빙의된 하경이라면, 그렇다면 저 동성애자 녀석들을 한번에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 뎅뎅 울리고, 천을 목에 감싸고 무전기를 든 하경이 드디어 교회 건물에서 나왔다. 신성한 천이 아니라 수건처럼 보인다는 점이 흠이었다. 조금 더 제대로 묶어줄걸. 목사는 하경이 동성애 시위대로 오해받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었던 것 같았다. 하경이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비켜주었다. 흡사 모세의 기적 같았다. 교회에서 동원된 사람들은 하경을 알아보고 전부 비켜주었다. 반면 무지개를 입은 녀석들은, 하경이 뭐라 말하자 다들 비켜주었다. 목사는 마음속으로 ‘하경이 불쌍한 저것들을 치유했다’로 받아들였다.

하경이 그렇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회장으로 나아갔을 때, 누군가가 인파 속에서 튀어나와 하경을 쳤다.

목사는 하경의 근처로 살금살금 숨어들어갔다. 잘 보니 어린애 한명은 도망갔고, 하경과 시커먼 여자애 한 명만 남아있었다.

가까워지자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김하경 씨 맞나요?”

잠깐만, 저 여자애가 어떻게 김하경을 알아? 목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하경은 피하지 않고 예진을 응시했다.

“예진아.”

“하경아, 어, 음…. 그러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다. 그치?”

“나 이제 교회 다녀.”

잘한다! 목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던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전부 쓸어버리는구먼.

“아, 어. 그렇구나.”

“비켜.”

“응?”

“비키라고.”

하경은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어갔다.

“만나는 여자 있어.”

목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경이 만나는 여자가 있다고? 하경이가 사실, 설마 정말 그 동성애자였다고? 목사는 눈을 찌푸리며 안경을 다시 썼다.

“미안.”

그리고 하경은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목사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충격을 견디며 목사는 홀로 남은 예진에게 다가갔다.

예진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잊어버린 채로 멍했다. 누군가가 말을 걸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경이 남자…. 아니, 여자친구에요?”

“전… 이요.”

“그럴 리 없잖아요.”

목사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진의 코가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제 전 여친 맞아요.”

“무슨 소리세요. 하경이가 그럴 리 없잖아요.”

“제 전 여친 맞다니까요? 혹시 전 애인이라도 되세요? 아니면 혐오세력이세요?”

“혐오세력 아닙니다!”

목사는 크게 외쳤다. 순간 주변의 사람들이 목사 쪽으로 돌아보았다. 목사는 음절 하나하나를 곱씹듯이 말했다.

“혐오세력 아니고, 하경이는 동성애자 아니라고요.”

그때, 목사의 무전기가 지지직 소리를 냈다. 무전기를 오른손으로 천천히 들어 버튼을 눌렀다.

“여기는 윤노엘 목사입니다.”

“세 번 부인할 거라고 했죠?”

순간 공기가 멈췄다. 목사는 말을 하려 했지만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경의 그 음성은 ‘베드로’가 듣기에 무척이나 ‘예수’였기 때문이다.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예진은 주변 시민에게 경찰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이 오자 예진은 그제야 눈물을 글썽이며 자리를 피했다. 그 와중에도 목사는 다리만 덜덜 떨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하경이는 결국 교회에서 쫒겨났다.

퀴어축제에서 아무런 방해도 하지 못했고, 빙의가 해제된 후에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님은 아무도 해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동성애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를 용서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그냥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목사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하나같이 격분했고, 하경이는 새신자 접수증을 바닥에 집어던지고 교회를 제 발로 나갔다. 덕분에 하경이는 목사들의 회식 때마다 안주거리가 되고는 했다.

예수 빙의를 위한 천은 무지개색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목사들은 그걸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문제의 목사는 베드로 안경이 주머니에 잘 있는지 확인했다. 안경은 잘 있었고, 모든 게 완벽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 어딘가가 걸렸다.

텅 빈 지하실, 목사는 안경을 썼다. 그리고 가슴 속으로 동성애에 대해 생각했다.

동성, 나와 동성인 사람과 손을 맞추고, 서로 안고, 입술을 맞대고….

왜 연상이 자연스럽게 되는 걸까.

그때, 베드로의 목소리가 뇌 속에서 들려왔다. 목사는 움찔했지만, 결국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얼은 디나이얼이라더니 진짜네?”

# #소설

완전히 알 수 없어도 기억하는 자세

겨울학기 문학팀에서 분명 <소년이 온다>를 읽었던 것 같은데, 나는 멘탈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었나. 아무튼 한강 작가님 책은 감정을 세게 건드리는 면이 있어서 미뤄두었었다. 사실 괜히 '유행 따라가는 사람' 될까 봐 조금 미뤄둔 것도 있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요새 자꾸 동아리방에 사둔 <소년이 온다> 두 권이 눈에 밟혔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조만간 5.18 기행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정말 미룰 수 없었다. 그냥 부딪혀보자 하는 생각에 일단은 책을 펼쳐보았다.

제일 먼저 든 감상은 12월 3일의 비상계엄이 실패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너무나 부끄러웠는데, 5.18 당시의 열사분들을 보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며 타자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마주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화 기반 문학이라는 것은 논란에 빠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년이 온다>는 참상의 현장을 강하게 묘사했음에도 그 수위와 관련된 논란은 일절 없었다. 그 뜻은 실제 현장이 이것보다 훨씬 참혹했을 거라는 말 아닐까. 결국 우리는 책 한 권으로 그때의 참상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알 수 없어도 기억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 책에 묘사된 것 이외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그때의 정신을 깊이 새겨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따져보면 나도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이 책을 펼쳐본 것이다. 유행 따라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 책을 모두가 한 번씩은 펼쳐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좋은 책이다.

# #독후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