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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e we became

*이 글은 정신질환 진단 경험에 대한 비판적 자기서사입니다. 과거 병원이나 병동에서의 강제 조치, 자해행동 등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단은 일종의 프레이밍이다. 의사와 상담사는 상당히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부여한다. 이 사람이 하루종일 글을 쓴 건 조증 때문이야. 저 사람이 집중을 못하는 건 ADHD나 우울증 둘 중 하나 때문일 거야.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경우는 본인이 자신의 병명을 정체성으로 갖는 경우가 아니다. 본인이 미쳤다는 것을 정체성으로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고, 나도 그러하다. 다만 나는 타인이 나에게 부여한 프레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언젠가 DBT(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잠깐 받은 적이 있다. 들어가기 전 제일 먼저 했던 일은 MSD 매뉴얼을 상담사와 함께 읽어보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경계선 인격장애라고 ‘진단’ 받았고, 매뉴얼은 나의 성격을 꿰뚫어보려는 듯이 조목조목 분석하고 있었다. 버려짐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 분노, 쉽게 변함, 충동적 행동 및 자기파괴적 행동.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었다. 버려지는 게 두려웠지만 화를 내는 편은 아니었다. 충동적 행동들은 ADHD와 양극성 장애라는 또다른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격장애라는 것이 사람의 인격을 병으로 규정하는 것이니만큼, 나는 그 이후로부터 나의 성격에 진지하게 ‘병’이 있다고 믿었다. (이때 결함이 있는 성격을 인식하는 것과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병리화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임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진지하게 인격장애라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건 꽤 최근에서이다. 우연히 퀴어 서적을 다룬 서점에 갔다가 매드 운동을 접하고, 광기학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짧게 말하면,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힌 미친(Mad) 사람들의 자율성과 권리를 외치며, 정신의학적 치료와 통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다. 그제야 나는 나의 많은 부분이 ‘인격장애’라는 프레임에 가두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어,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본인의 정체성이 불확실하고 자주 바뀌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 때문에 나는 그동안의 ‘정체화’ 경험들을 모두 병적인 행동으로 인식했고, 나의 정체성을 언어화하려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 정체성에 변동이 생기면 경계선 인격장애의 프레임으로 모든 게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을 쓰는 것 자체도 프레이밍이 가능하다.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경계선 인격장애를 ‘완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DBT로 자해나 자살 경향성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이를 먹는 것이다. 이 방법들을 들여다보며 뒤늦게 깨닫는 부분이 있다. 약을 먹는다고 치료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약을 복용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처방받지 않을 권리가 필요한데, 어째서 상담사는 처방을 강요하는 걸까. 혹은 자해 행동이 어째서 강제 입원의 사유가 되는 것일까. 그것으로 인해 본인이 고통받고 있다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병동 앞에 놓여져 있던 진정서를 기억한다. 입원 과정에서 본인의 인권이 침해당했을 때 진정서를 써서 넣으면 되는데, 나는 ‘자해 위험’이 있다며 볼펜조차 받지 못했다. 강제된 약물 복용은 병동 내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며, 나는 매드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언뜻 보면 아픈 사람이 치료받는 것인데 왜 인권 운동이 필요한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의학과 정신건강 제도의 폭력성, 정신질환이 주는 낙인을 고려해봤을 때 운동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강조하지만 나는 지금 병식이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쳤다는 것을 긍정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프레임을 외부에서 씌우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진단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병명을 기록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언론은 성적 소수자를 특정 질환이나 사회병리 현상과 연결 짓지 않는다. 성적 소수자의 성 정체성을 정신 질환이나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묘사하는 표현에 주의한다.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취재 가이드라인 중 하나이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인권보도준칙에도 동일한 내용이 있다.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정신 질환과 연관짓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와 같은 가이드라인은 '동성애 전환치료', '트랜스젠더는 정신병' 등의 혐오적 맥락을 가진 표현을 막는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 대한 비판도 있다. 정신 질환 약물 복용자가 퀴어축제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신 질환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성소수자들도 존재하며, 나도 그 중 하나이다. 나는 이 보도준칙에 반대하지는 않는데, 정신 질환과 퀴어가 혐오적인 맥락으로 엮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신 질환과 퀴어를 멀리 떼어놓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1980년대에 출간된 DSM(정신질환 진단 메뉴얼)에는 “동성애”를 포함하지 않은 첫 버전이다. 동시에 “성 정체감 장애”가 새로운 진단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 결정에는 동성애를 건강과 결합시킴으로써 젠더 비규범성을 질병과 결합시키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동성애는 병이 아니다, 우리도 건강한 사람이다'라는 주장은 많은 동성애자에게 이로울 수 있다. 실제로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은 전환치료, 강제 입원, 사회적 배제 등 심각한 폭력과 학대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는 말은 동성애자들에게 실질적인 해방감을 안겨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를 건강과 나란히 두는 프레임은 새로운 정상성을 만들어내었다. 트랜스젠더와의 간극을 벌림으로써 트랜스젠더를 새로이 병리화한 것이다. 우리가 보통 '동성애자'라고 말한다면 젠더 규범을 잘 따르는 모노가미를 떠올린다. 그 사이에서 젠더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가지는 사람,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사람, 인종적으로 차별을 받는 사람은 지워진다.

따라서 동성애가 DSM에서 삭제된 것은 분명히 진보적인 결정이었지만, 동시에 트랜스젠더의 젠더 비규범성을 새로이 병리화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젠더 디스포리아를 정신과 질환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하나의 특성으로 바라보자는 기조를 갖고 있다. 트랜스젠더를 다시 정신 질환으로부터 탈병리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타당하게 만들고, 젠더 디스포리아를 줄이기 위한 의료 체계와 약물 사용 접근성을 높인다.

다만 이는 '제정신이 아닌' 트랜스젠더가 배제되는 경험을 만든다. 나는 어떤 커뮤니티에서 젠더 디스포리아가 이인증이 아니라는 주장을 본 적 있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인한 이인증과 젠더 디스포리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인증을 겪고 있는 트랜스젠더는 필연적으로 본인의 젠더 디스포리아가 '실재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바운더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사례가 아니더라도, 이미 정신 질환이나 그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호르몬 치료 등 성 정체성 지지 요법을 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의 주 법은 자폐를 가진 청소년의 성 정체성 지지 요법을 제한해왔다. 성 정체성 지지 요법을 받기 전에, (고리타분하게 자폐를 정신 질환으로 본다면,) 정신 질환은 일종의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트랜스젠더의 탈병리화는 표면적으로는 좋은 일로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여전히 ‘정상성’이라는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 ‘병적이지 않은’ 트랜스젠더만이 제도적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히 진단명에서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다양한 트랜스 경험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하고 비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우리는 정신 질환과 퀴어를 멀리 떼어놓아 혐오발언의 여지를 없애는 전략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탈병리화되지 않은 다른 존재들을 배제한다.

나는 양극성 장애와 ADHD, 경계선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 상담사는 나에게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많이 겪는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의 정체성이 논바이너리 트랜스라는 사실을 병원이나 상담실, 그 아무데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제 논바이너리 트랜스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병리화된 상태에서 '트랜스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정신 질환과 성소수자, 둘을 완전히 멀리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지침은 어쩔 수 없이 둘을 떼어놓았더라도, 나는 모두가 둘의 교차성을 생각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매드와 퀴어, 둘에게 찍힌 사회적 낙인이 모두 없어지는 그 날을 바라본다.

참고한 글:

https://m.blog.naver.com/0_0ye0ng/223779574753

https://m.blog.naver.com/0_0ye0ng/223649874098

2017년, 타이완 사법원은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제가 헌법상 혼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년 내로 입법이 이루어져야 하며, 불이행 시 민법상 동성혼이 자동으로 허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발한 보수 세력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법 개정을 저지하고자 했으며, 자본과 미디어 자원을 활용해 여론을 주도했다. 그 결과 민법 개정은 무산되었으나,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기에 이른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믿지 않았습니다. 주로 대학교 내 민주주의를 볼 때 회의감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세습에 가까운 단일 선본이 출마해 선관위가 홍보를 뛰는 형태가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비상계엄이 있고 나서 학생총회가 성공했을 때, 윤석열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았을 때 민주주의의 정상 작동을 보았습니다. 민주주의자라는 용어가 어색하지만, 어디 가서 물어보면 나는 민주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오늘 이 책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인권을 다수결에 부치는 것도 민주주의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정말 민주주의자로써 부끄러워질 것 같아요.

타이완의 보수 세력은 민법상의 동성혼 법제화를 저지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찬반을 부치게 됩니다. 사법원이 헌법상 평등권의 영역이라고 판단했는데도 말입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수결이라 해도, 그것이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정당성을 잃습니다. 소수 의견 존중의 원칙까지 갈 필요도 없고, 그냥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민주주의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정했으니까요. 그리고 만일 존재의 찬반표결이 정당한 것처럼 국민투표에 부치게 되면 자본력이 많은 쪽이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합니다.

존재를 표결에 부치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특별법으로라도 동성혼이 법제화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민주주의를 앞으로 믿어도 되는 걸까요.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투쟁해야겠죠.

우리 예수님 그렇게 꽉 막힌 분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본인은 디즈니가 싫다며,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보수 세력은 미국이라면 뭐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교회를 거의 나가지도 않았고, 종교를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장마오전 목사가 “기독교가 믿는 건 성경만이 아닙니다. 예수도 믿죠.” 라고 말했을 때는 그 의미를 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왜곡 해석한 반동성애를 이데올로기로 삼아, 동성애를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예수가 좋아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인권의식이 괜찮은 목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응답하라

읽으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타이완의 민진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는 더 진보적인 것 같았거든요. 중도보수라고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은 기독교인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정치에 대해 무지한 편이라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고작 차금법에 정치권이 이렇게 반응한다면 갈 길은 멀고 험한 것 같습니다. 마땅한 권리조차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세상에서 투쟁입니다 투쟁.

마무리

제가 책을 감상하는 기준이 유해서 매번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정말 최고로 좋은 책입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 타이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700번도 넘는 회의를 거친 활동가들의 이야기, 보수 정당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힘쓴 국회의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독후감

인생 두 번째 서퀴인데 부스러가 되었다. 부스 안쪽이 훨씬 더운데도 처박혀있는 것이 나았다. 밖은 인파로 넘치고 굿즈 영업 소리가 째질 듯이 들렸다. 사람이 무서울 시기는 지났지만 어쨌든 바글거리는 서울에 적응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상대적으로 한적하던 대전 퀴퍼가 떠올라 더 움츠러들었다. 아, 난 서울이 너무 힘들다. 정말 힘들다.


솔직히 저 한 문단이 서퀴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는 한다. 그래도 후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이상, 인파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릿속에 담아놓은 걸 얘기해야겠다.

자본주의 퀴퍼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 싶다. 서퀴에 가면 온갖 후원리워드를 파는 부스들이 많다. 간혹 대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도 흔하다. 퀴퍼의 자본화가 우려된다는 말도 상당할 정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축제가 시장바닥이 되어 운동성을 잃어간다는 것. 하나는 대형 자본의 개입으로 퀴퍼의 본질이 손상되는 것.

후원리워드에 대해 해명을 하자면, 소규모 퀴어 운동 단체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퀴어 단체들은 후원과 기금으로 굴러간다. 서울퀴퍼는 가장 많은 사람이 오는 퀴퍼이며 후원금을 쌓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어쩔 수 없다. 굿즈를 팔아서 후원금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종할지도 모르니까. 더러운 세상에서는 돈이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기왕이면 단체들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후자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간혹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국의 퀴퍼가 기업과 상업화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시선들이 눈에 띈다. 기업 로고에 무지개를 입히고 퀴어 상품들을 판매하지만, 정작 인권 개선에는 소극적인 그런 퀴퍼. 거대 자본기업의 핑크워싱이 판치는 것은 정말로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퀴퍼'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질까 걱정이 된다. 결국 대응 방식이 소비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퀴퍼의 자본화가 걱정된다면, 직접 참여로 퀴퍼의 운동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어떨까 싶다. 교차적인 의제에 대한 몸자보를 입고 간다든지, 행진에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선다든지, 혹은 조직위에 뛰어든다든지.

아무튼 모쪼록 대한민국의 퀴퍼가 운동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퀴퍼가 안전하고 예쁜 공간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퀴어퍼레이드' 하면 자동으로 서울만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퀴를 아예 퀴퍼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지역의 퀴어퍼레이드에도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방에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여기에도 퀴어 살아요.


서울퀴퍼에서 받은 스티커들을 정리하고, 후기를 쓰려고 하니까 있는 사진이 거의 없더라. 사람 얼굴이 안 나오게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까, 유일한 사진이 진보당 현수막밖에 없다. 다음 서퀴 전에는 발의가 되어서 통과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내정당이니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투쟁.

#에세이 #일기

퀴어 운동을 하다 보면 가끔 친구들이 질문을 합니다. 자신은 2D 캐릭터를 사랑하는데 왜 성소수자로 인정받지 못하냐고요. 솔직히 처음에는 혐오자들의 레파토리인 줄 알았는데, 더 이야기해보니 순수하게 궁금해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퀴어라는 것은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랑은 기본적으로 퀴어하나 사회에서는 2D 캐릭터를 향한 사랑을 성소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고요.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정체성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이 대답은 ‘정체성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가정이 깔린 질문이었습니다. 정체성 정치에는 분명히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가르고, 결국에는 ‘당사자’들만 살아남는 구조이죠. 탈락한 당사자들은 당사자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제일 대표적인 예시가 디지털 래디컬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범위를 줄이고 축소시켜 기혼자 여성, 트랜스여성, 퀴어 여성들의 연대를 수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쁜 예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에 강력한 점 또한 있습니다. 강한 단결을 만들어 사회적 가시화를 이루어내는 것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나는 퀴어이다, 나는 퀴어인 것이 자랑스럽다, 라고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라면 정체성이 본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태어나기를 레즈비언으로 태어났다, 와 같은 것이죠. 그래야 고정된 정체성이 타협 불가능한 본질임을 강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치료는 무용지물이자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정체성이 고정되어있다는 말은 퀴어 이론과는 어긋나 보입니다. 정체성이란 것은 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인데, 정체성 정치는 본질주의를 추구하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과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시 말해 전략적으로 본질주의를 이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퀴어 이론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강요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퀴어 운동에서의 정체성 정치가 유효한 것과 별개로, 위험한 점이 많습니다. ‘진짜 퀴어’가 아니라고 배제당하는 퀴어들이죠. 예를 들어 무성애자가 받는 억압이 가짜라고 주장하거나, 이성을 사귀는 바이섹슈얼들에게 사실은 이성애자 아니었냐고 묻는 등의 일입니다. 정체성 정치를 무기로 쓰려면, 그 무기가 본인을 찌르지 않는지 보아야 합니다. 퀴어 운동을 위해서라면 끊임없이 방향성을 성찰하고 퀴어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흐름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비당사자의 배척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지털 래디컬 페미니즘은 자주 남성의 여성의제 연대를 거부하고는 합니다. 이것 또한 정체성 정치의 어두운 면입니다. 그렇다면 퀴어 운동의 정체성 정치에서도 유사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요? 퀴어는 아니지만 연대하고 싶은 사람은 정체성 정치의 현장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요? 그럴 때 앨라이라는 이름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자들에게도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서 일종의 ‘같은 편’으로 포섭하고, 연대자에게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환대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연대자가 의제에서 ‘비당사자’로 남지 않게 되죠.

정체성 정치에는 분명 위험이 따릅니다. 배제의 논리로 작동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는 외부로 내보일 때 강력하고, 가끔은 이 정치적 언어를 계속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끊임없이 커뮤니티 내부를 점검하고, ‘앨라이’라는 연대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해 타인을 환대해줄 수 있다면, 퀴어 운동이 조금은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세이

“지하철이 안 오는 것 같지 않냐.” 장애인영화제에 난입한 모 밴드의 혐오적 발언 중 하나이다.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 탑승이 지연된 건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탑승이 시위가 된다'는 문장에서 모순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경찰이 오기 전까지 막무가내로 공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퀴어 퍼레이드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도 말했다는 점이다. 퀴어한 장애인, 장애를 가진 퀴어들에 대한 인식이 있었던 걸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듯이, 이들은 혐오를 교차적으로 행함으로써 인권이 교차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근거를 주었다.

이 책은 장애인과 장애 인권에 대한 에세이 30여 편을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 장애와 인종차별, 성소수자 인권, 성적 자기결정권 등이 어떻게 교차적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이것도 장애였다고?' 싶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는 장애가 하나의 정의로 수렴되지 않음을 뒷받침한다. 장애와 연관된 의제는 수도 없이 많으며, 이 책은 저자들의 경험을 통해 그 내용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 중 20%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장애인권도 역시 가시화의 문제인가. 관련해서 어떤 후배가 특이한 주장을 한 적이 있었다. 학교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으니 특혜를 줄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애인이 없을 리 없다. 보이지 않는다면 왜 보이지 않는지를 생각해야 타당하다. 그리고 장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드러나게 가시화해야 한다. 또 첨언하자면 대부분의 '특혜'들은 어퍼머티브 액션조차 되지 않는,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권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더라도 장애인권의 신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사실 책을 읽으며 스스로가 혐오발언을 하고 살았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이런 장애인의 경험담을 담은 책이 더 많이 출판되고 널리 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미국 정권은 트럼프가 쥐고 있다.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 이 책처럼 진보적인 프로젝트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독자적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후감

어쩌다 보니 독서모임에서 읽게 된 책.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 없이 본문만 읽었다.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건 사람이다, 사람은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던 걸까 생각했다. 심지어 초반 부분을 읽었을 때는 억압된 여성의 욕망과 그 분출과 관련된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찾아보니 자연주의 소설이라고 해서 따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자연주의 소설이 어떤 것이고 하니, 낭만주의에 반대되는 문학사조라고 한다. 환경이나 유전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 문학을 뜻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애정 없는 결혼, 음침한 공간, 병약한 남편이 테레즈의 신경질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만든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테레즈와 로랑 사이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육체적 충동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개입이 아닌 그들의 업보인 것이다.

문학사조나 고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자연주의가 인간의 잔혹성을 묘사하게 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 같다. 그러나, 이런 소설들을 읽을 때는 세상이 생각보다 과학적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도 아픈 아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자연주의가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일지 몰라도, 실제 인간은 그렇게까지 단순하지 않다고 믿고 싶다.

#독후감

작가 본인의 데모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이다. <저주토끼>나 <너의 유토피아>같은 유명한 작품들을 건너뛰고 <아무튼, 데모>부터 읽게 되었다. 아무튼, OO라는 시리즈의 한 작품인데, 정말 많은 주제들이 있다. 디지몬, SF게임, 서재, 망원동... 그 사이에서 홀로 빨간 표지로 데모. 라고 적혀있는 게 기억에 남았다. 데모. 읽어볼 수밖에 없는 주제.​

정보라 작가님은 광장 경력자이시다. 세월호 때부터 광장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오신 선배님의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듣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권, 장애인권, 성소수자 인권, 이태원과 세월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광장에 나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책 초반에 성폭력 가해자 김기홍이 추모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점이 아쉽다. 아마 김기홍 사후에 공론화된 내용을 모르셨던 것 같다.)

책에서 제일 인상깊었던 문장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2017년에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세상이 조금 좋아질 줄 알았다. 노동자들이 고공농성도 하지 않고 일하다 죽지도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순진했다.” – <아무튼, 데모> 중

2025년은 어떨까. 왠지 데자뷰인 것 같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많은 것이 바뀌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상의 차별금지조항은 '성적 지향'을 차별 목록에서 제외하고 재발의 예정이라고 한다. 옵티컬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는 아직 땅을 밟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바꾸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책의 마무리를 따오려고 한다. 더 나은 세상이 올 때까지, 투쟁.

#독후감

인생의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인 제2회 대전퀴어문화축제. 신나게 잘 다녀왔다. 온갖 스티커들이 생겼는데 조만간 일기장에 붙일 예정이다.

연대발언이 제일 가슴 뛰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는 탄핵 광장과 대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담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대선(6/3) 직후가 축제(6/7) 날이더라. 수어 통역 때문에 대선 전에 미리 스크립트를 보내야 했다. 1번이 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같은 걸 보낼 수 있었겠지만, 만일 2번이 된다면 차별금지법을 얘기할 정신이 아닐 것 같아서, 대선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그 경우였다면 인권 광장이 탄핵광장이 될 게 뻔했던 것 같다.

1분짜리 연대발언치고는 상당히 무거운 내용이 담겼다. 고 변희수 하사의 현충원 안치와, 그 외의 잊힌 수많은 죽음들 이야기를 했다. 대전퀴어문화축제가 6월 7일로 예정된 이유 중 하나는, 그날이 현충일 다음날이기 때문이었다. 6월 6일에 현충원에 안치된 변희수 하사 추모식 또한 있어서 연대발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들 탄핵광장과 위헌적 비상계엄 이야기를 하더라. 서울에서는 아트하우스 모모의 퀴어영화제 대관 거부 이야기를 했고. 그래도 준비한 발언이 다른 발언들과는 달라서 좋았던 것 같다.

연대발언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해방이나 동물권, 장애인 인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사실 퀴어퍼레이드에서 발언을 유심히 본 것은 처음이었다.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더해, 이번 축제에는 옵티칼 국회 청문회 개최 청원 몸자보를 붙이고 오신 분들도 있었다. 우리는 노동인권과도 연대할 수 있으니까. 인권운동은 결코 혼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인생의 두 번째 퀴어문화축제라고는 하지만, 퍼레이드 즉 행진에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알다시피 이미 광장 짬은 차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행진하고 왔다. 다른 분이랑 “여기에서는 빨갱이 소리 안 들어서 좋다” 같은 실없는 소리도 하고. 어떤 교회에서는 연대의 의미로 창문 밖으로 무지개 깃발을 걸어주셨다. 덕분에 행진도 어떠한 충돌이나 무리 없이 신나게 마치고 온 것 같다.

이번 축제는 혐오세력과의 충돌이 거의 없었는데, 행진할 때 보니 경찰이 엄청나게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옆에서 맞불집회도 했다고 들었는데 부스에만 있어서 몰랐다. 오늘만큼은 혐오세력이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얼마 전 민주당이 발의한 정보통신망상의 차별금지조항이 많은 반대를 받았고, 민주당에서 ‘차별금지 목록에서 성적 지향을 빼고 재발의’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점을 명확히 하고 가야 할 것 같다.

일주일 후인 6월 14일은 서울퀴어퍼레이드이다. 그 후에도 여러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겠지. 말 그대로 연대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세이

5.18 기행을 다녀오고 나서 사진 몇 장이 남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로 5.18의 현장에 다녀왔었다고? 그만큼 현장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전일빌딩에 남아있던 총탄 흔적이며, 묘역에 안치되었던 수많은 열사분들도.

이번 5.18 기행은 당일치기였다. 내심 전야제에도 참석하고 싶었기 떄문에 당일치기인 게 아쉬웠다. 이번 스케줄은 전일빌딩과 기록관에 갔다가 5.18 묘역에 가는 것이었다. 근처 YMCA 건물이었던 곳에서 든든하게 김치찌개를 먹고 출발했다.

전일빌딩이 왜 전일빌딩인가 했더니 전남일보 빌딩의 약자였다. 전일빌딩에서는 실제로 남아있는 헬기 사격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시민한테 총을 쏜 것도 모자라서 헬기를 띄워 전남일보 빌딩에 쏘았다고 한다. 기둥 하나에 몇십 개의 총알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목격자도 많았고. 그런데 아직도 전두환 세력은 헬기 사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일빌딩의 전망대에서는 5.18 당시 17일에 사람들이 연설을 했던 분수대도 볼 수 있었다. 전 전남도청 앞에 분수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 때에도 연설을 했다고 한다. 역사가 이어지는 순간이구나 싶었다.

같이 기행을 간 후배가 나한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전일빌딩 앞에서 시계탑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앞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국힘 대선후보인 김문수의 현수막이었다. 12.3 비상계엄 당시 협력했던 그들 말이다. 이제 와서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지만, 계엄은 잘못되었으니 사과한다’라고 말해봤자 뭐하나. 우리는 정말 아직도 내란 세력들을 뿌리뽑지 못하고 있다.

이후 스케줄은 5.18 국립 묘역이었다. 묘역에 가면 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유령 같은 건 안 믿는다며 씩씩하게 다녀올 것을 맹세했는데, 후반부에 깨지고야 말았다. 투쟁하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울 것 같이 거의 압도당하는 기분으로 신묘역을 돌아다녔다.

열사분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민중항쟁의 두 열사를 기리기 위한 곡이라는 것이 기억난다. 퇴진 집회에서 들었던 노래가 5.18을 기리기 위한 노래였고, 즉 5.18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국립묘역에서 다짐을 정말 많이 했다. 그때 돌아가신 열사분들의 정신을 이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듯,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죽은 자가 오늘의 산 자를 살렸듯이, 오늘의 투쟁은 우리의 몫이다.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기행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대선 토론회를 봤다. 거기에서 정말 다양한 헛소리를 접한 것 같다. 제일 황당했던 건 누군지 모를 보수 후보의 ‘거기는 반미 아닙니까?’ 언급. 그런 말들을 참으며 꾸역꾸역 토론회를 봤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이랬다. 조금이라도 행동하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기억하는 것. 그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도 5.18마다 광주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일기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