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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e we became

울산시 청년정책 중 “미혼남녀 만남 프로그램”이 있다. ‘미혼남녀들을 대상으로 건전한 취미생활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커플 매칭을 통한 결혼친화 분위기 조성, 저출산 해소’. 울산시가 주도하는 소개팅 사업이라니, 얼추 보면 우습게 보이지만 그 이면은 결코 웃기지만은 않다. 결국 울산시에서 청년들의 이탈이 심해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만큼 울산시의 청년이탈 상황은 심각하다. 특히 청년 여성의 이탈이 심각하다. 20대 남성의 순유출률은 0.7%이고, 20대 여성은 그 2배인 1.3%를 기록하고 있다. 인구 유출의 대부분은 수도권으로 이루어졌다. 유출 사유는 울산의 도시경쟁력, 주거환경, 일자리 능력 등이 있을 것이나, 울산에 거주 중인 청년 여성인 내가 경험하는 제일 큰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제조업 도시인 울산에서 여성의 제조업 종사비율은 36.3%로 낮은 편이고, 성별임금격차도 42.4%로 높은 편이다.

최근 2025 울산여성일자리박람회가 열렸다. 직접 둘러본 소감으로는 사무직, 생산직, 조리직, 간호직 등의 여성 위주 산업으로 부스를 채우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런데 그뿐이었다고 해야 할까. 옆에는 관광일자리페스타까지 같이 진행되어 행사의 규모가 커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여성 위주 산업 부스는 40개 남짓이었다. 게다가 박람회 이름에 여성이라고 박혀 있지만 남성도 자유롭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안내도 있었다. 이번 행사를 가서 나는 역설적으로 울산에 내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그 한계가 명확한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결국 울산에는 일자리가 정말 없고, 여성 위주의 일자리는 그보다도 더 없다. 제조업 위주의 도시인 울산에서는 여성 위주의 산업이 적다는 명백한 사실도 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이를 울산시도 알고 있는지, 각종 취업지원 사업들을 청년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격증 응시료 지원사업, 면접 정장 대여사업,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 등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취업지원 사업들이 정말 울산에 청년을 잡아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 많다. 근본적으로 청년들의 이탈은 취업지원 부족이 아닌 일자리 부족, 청년 일자리 부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와 노동 문제는 깊이 얽혀 있다. 노동 문제 현안 해결 없이 청년 이탈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울산이 좋지만, 가끔씩은 울산이 나를 쫓아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디 울산이 '결혼친화' 도시가 아닌, '청년친화' '노동친화' 도시로서의 방향성을 택하길 바란다.

참고자료: http://www.ulsa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427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556327

https://www.yna.co.kr/view/AKR20230626112800530

청년 이탈 문제가 울산의 일만은 아니다: https://youtu.be/g4jY_o1JnoQ?si=vM4CDBwQ2vqJJcU_

[스포 매우 많음]

창비가 마케팅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운동권에 가해진 국가폭력이 포함된 책인데, 아 활동가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런데 홍보를 간첩할머니와 도끼청소년 이런식으로 했다... 나도 멜라작가님 아니었으면 책 안 읽었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읽고 죽지 않았다.

처음에는 청소년과 할머니의 동거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책에 학생 운동권이 나올 줄은 진심 몰랐다. 2장 중간즈음에 결국 국가폭력 때문에 투신하는데, 내 맘도 찢겼다. 그러니까 이게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많이 죽었고 많이 갇혔으니까.

없는 존재인 사귀자와 아세로라는 없는 존재답게 손을 맞잡지 못하고 서로 모르는 것도 많은 상태로 서로의 동거인으로 남는다. 심지어 할머니와 손녀 관계인데도 가족보다는 동거인에 가깝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인거지. 멜라답지 않은데 멜라다워서 좋다.

여담으로, 책 마지막에 작가의 말에 조국통일이 소원인 삼촌을 신기해했다는 회고가 나오는데, 그냥 나 아는 사람들 같아서 웃겼다.

아무튼 믿고 읽는 멜라작가님!

“학생단체 또는 학생이 신문, 학술지 등의 간행물을 정기 또는 부정기적으로 발행하려는 때, 또는 발간된 간행물을 배포하려는 때에는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내가 재학 중인 대학의 학칙 제94조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위배된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칙 제94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항이자, 대학 본부의 권력을 학생자치 위에 군림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항은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활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교내 생활단체가 교내 및 교외집회를 하기 위해서는 지도교수를 경유한 학생처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규정에서 쓰인 단어 변화도 흥미롭다. 2016년 전에는 “집회를 하려고 할 때”였으나, 이후 “집회를 하려면”으로 개정되어 문맥상 강제성을 더하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규정에 따르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이하 ‘집시법’을 위반한 시위의 경우 학생처장이 집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 해당 집회가 집시법을 위반하는지 학생처장이 알 방법이 전무한데 말이다. 집시법에 따르면 집회의 해산 권한은 관할 경찰서장에게 있다. 학생처장이 경찰서장에게 법적으로 어떠한 권리를 위임받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재학 중인 대학의 학칙만이 학칙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교 학칙은 학생들의 정치활동과 자치활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0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국가인권위는 학생의 각종 활동에 학교 측 승인이 필요하다는 조항을 고칠 것을 여러 대학에 권고한 바가 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권고’ 이상의 조처를 할 수 없고, 대부분의 대학에서 해당 조항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일상적 계엄령이나 다름없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가. 유신정권이 물러난 지 50년 이상이 지났는데 학칙에 남은 흔적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수록 권력에 저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세상에 지지 말아요>라는 민중가요에는 “법과 권력이라는 폭력에 무너지지 마”라는 가사가 나온다. 학칙이라는 폭력에 무너지지 말자. 집회·결사·언론·출판의 자유를 지키자. 교내에서도 얼마든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것처럼 행동하자. 실제로 우리에게는 헌법이 명시한 권리가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회주의자의 유쾌한 에세이이다.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불화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아프고 답답한 글을 써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전에 정당에서 <자본론> 강의를 들은 적 있었는데 그때 구매한 책이라서 자본론 내용이 많으려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 사람 사는 이야기였고,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가장 충격받았던 건 2015년에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고 함께 토론했다는 이유로 학생 운동가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책은 유명한 고전 경제저서를 리뷰한 권장도서인데도. 나도 사실 이번 사회과학 소모임에서 마르크스주의 공부를 해볼까 생각중이었어서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국가보안법이 이렇게나 시대착오적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했다. 제발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보통 좌파로 산다고 하면 친구들이 노동자가 어떻고 자본가가 어떻고 하는 질문을 하는데, 초보라서 헷갈릴 때마다 멍하니 있고는 한다. 이 책을 읽고 확고한 자신만의 생각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좋았던 걸 하나 더 꼽으라면 특정 분파의 욕이 없어서. 그러니까 사회주의자 사이에서도 많은 종류가 있고 늘 서로 싸우기 마련이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은 싸움의 가능성을 조금 없애고 낸 것 같아서 좋았다. 누구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좋아요.

오늘 독서모임에서 무한경쟁사회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서도 <현시창>이라는 책을 위주로 얘기했는데, 카이스트 자살 사건이 한창 가시화되었을 때의 글을 읽고, 각자의 경험을 풀어놓는 시간이 있었다.

요즘에는 대학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나도 크게 소란이 일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아는 교내 자살 사건만 해도 여럿 있는데 모두 묻혔다. 성적 때문에 장학금을 잘렸다 말하면 돌아오는 것은 비난 뿐이다. 나는 성적 장학금 때문에 휴학한 경험이 있다. 다들 무한경쟁사회에 익숙해져 가는 건가. 씁쓸하다.

무한경쟁사회는 결국 좋은 직장,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야 하는 현실과 맞물리는 것만 같다. 조금만 경쟁에서 다른 궤도를 타도 바로 쓸데없는 경력 취급이니까. 그런 점이 슬펐던 것 같다. 아마 중학교 때 이런 이야기를 봤으면 좋은 학교 얘기를 했을 거다. 영원히 경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다 나누고 보니, 왜 하필 ‘카이스트’였을까 싶다. 왜 카이스트에서 무한경쟁사회의 가시화가 시작되었을까. 명문대 사람들도 경쟁에 억눌려 지낸다는 사실에 어째서 사람들은 놀랄까. 추측하기로는 무한경쟁사회에서 ‘승리’한 사람들도 무한경쟁사회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놀라는 게 아닐까 싶다.

명문대에서의 사회문제와 투쟁이 먼저 가시화되는 것은 확실히 씁쓸한 문제이다. 분명 경쟁사회에서 승리했다고 여겨지는 자들의 투쟁이기 때문에 조명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투쟁은 가짜가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무한경쟁사회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와 떼놓지 못하는 담론이 하나 있다. SNS에서 대치키즈 플로우가 돈 적이 있다. 대치키즈들이 피해자성을 주장할때의 논점이 '무한경쟁사회'에 있는데도 계속해 ‘상위 계급’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계급사회는 계급사회대로 규탄할 수 있고 무한경쟁사회는 그것대로 규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계급 비판과 신자유주의 비판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대치키즈들이 특혜를 받았다는 것과 동시에 경쟁사회의 피해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의 경쟁사회에 대해서도 들어봐야 한다. 마이크를 조금 더 넓게 쥐어주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명문대 학우의 자살 사건’이 아니라, ‘다양한 청년들이 느끼는 무한경쟁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쳐야 한다.

독서모임에서 다른 이야기를 훨씬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느낀 점이 조금 다른 포인트인 것 같다. 혹시 얘기를 충분히 듣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다. 다음번에는 독서모임에서도 메모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지역 여성회에서 빌린 책이다. 내 명의로 빌린 게 아니기에 후딱 읽어버렸다. 총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간략한 책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책에서 '종북 세력' 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생각이 조금 달라지더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생각하니, 무조건적인 규제가 옳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현의 자유는 본래 소수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그것을 제한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게 책의 설명이었다. <말이 칼이 될 때>에서는 지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내규를 만든다든지, 교육 등에서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식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선언을 하고, 교육에서 혐오표현 근절을 위해 힘쓰는 방향성은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책이기도 했는데, 책이 2018년에 쓰인 걸 보고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2025년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정말로. 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금 인권위 돌아가는 걸 보면 애초에 그러지 못할 것 같지만.)

혐오표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립할 수 있는 책이었다. 혐오표현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손에 들려주면 좋은 책일 것 같다.

다음 책 모임까지 <현시창>이랑 <부들부들 청년>을 주제로 발제를 해야 해서 준비 중이다. 일단 <현시창> 발제한 거를 컨펌받고 <부들부들 청년> 컨펌받으려고 한다. 내용 요약도 하고, 궁금한 점도 끼적여보고 신문기사 몇 개도 찾아봤다.

신문기사 찾은 거 몇 개 첨부하기.

[김지학의 세상다양] 청년 문제로 보는 사회문제 https://vop.co.kr/A00001641208.html

비수도권 청년들 빨아들인 일자리 ‘블랙홀’은?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129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②] 불통의 청년 정치, ‘청년’에게 ‘청년 정치’를 묻다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0636

찾으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왜 사상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하는데, 정확히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발제가 넘 어렵더라. 그래서 조금 찾아보고 했다. 서마학 강의에도 나온다고 하니 일단 그건 그때 들을 예정.

그리고 정말 세상이 하나도 안 변했다. 이건 2013년 책인데, 12년이 지난 지금도 노조탄압은 계속되고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경쟁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으며 여성혐오 범죄는 디지털화되고 있다. 너무너무 답답한 상황이다. 심지어 이젠 이런 것들을 사회문제로도 보지 않는다. ‘청년들이 힘든 이유’를 개인의 탓으로, 호르몬의 탓으로 돌리고 있으니까.

여러모로 심란해졌다. 청년의 정치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 청년들만 청년 아젠다를 말해야 한다는 보장도 없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임시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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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발제를 위해 생각해 본 질문들.

1_ 책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그 이유는? 본인이나 주변의 경험 중 비슷한 사례가 있다면 이야기해봅시다.

2_ 책은 2013년에 쓰였고 그로부터 12년이 흘렀지만, 노동환경 개선과 경쟁사회, 여성혐오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시: 청년정치의 부재, 계급 구조의 고착화, 정책의 연속성 부족, 언론의 무관심 등)

2-1_ 노동 문제와 관련해, 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2-2_ 경쟁 사회의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경쟁이 불공정함에도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3_ 여성 성범죄 등 성차별 문제와 관련해, 최근 심각해진 백래시 현상을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눠봅시다.

3_ 책 속에서 가장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문제를 하나 골라,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해결방안이나 정책 아이디어를 나눠봅시다.

#독후감

<부들부들 청년>을 대강 읽어보았다. 2016년에 쓰인 책이고, 다양한 청년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 문제의 현안을 분석하고 ‘청년법’을 제시한 책이다.

처음에 놀란 것이, ‘요즘 청년 힘들다’라는 인식이 당시에는 공고했다는 점이다. ‘이생망’ 같은 신조어가 청년의 좌절감을 상징하였다. 헬조선이라는 말도 흥하고, 미생 드라마가 유명했던 기억도 난다. 이 책에서는 청년의 3대 문제가 주거, 노동, 지역 격차라는 지적 또한 등장했다. 적어도 청년 현안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기류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한편 탄핵정국 이전의 청년에 대한 프레임을 되짚어보면 제일 먼저 MZ라는 말이 생각난다. 싹바가지 없는, 설렁설렁 하는, 의지 없고 예의 없는 신입사원의 모습. SNL에서 주현영 기자의 연기가 그 인식을 대표하는 것 같다. 탄핵 이후로부터는 ‘청년층의 극우화’가 심각하다는 쪽과 ‘2030 여성의 응원봉이 세상을 바꿨다’라는 쪽으로 나뉜다. 어느 쪽이든 청년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해석은 없는 셈이다. 덧붙이면 ‘투표하지 않는 청년’이 어째서 투표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2016년에도 그러했지만 2025년에도 정치권이 청년들의 의제를 여실히 따라잡지 못한다는 느낌도 든다. 진보정당이 머물러있지 않고 청년들이 가져오는 의제를 잘 분석하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왜 그 의제를 지지하는지, 그 속에 숨은 문제는 무엇이었을지 등.

그 중 대표적으로, 왜 요즘 진보 청년들은 차별금지법을 지지할까? 단순히 퀴어 의제가 부상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년이 차별을 실감하였기에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모양은 이 책에 쓰인 ‘청년법’과 상당히 닮아있다. ‘청년은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재산, 인종, 지역, 학력, 신체 조건 등에 의하여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 청년은 오랫동안 성별, 나이, 학력, 지역 등을 명분으로 한 사회에서의 차별을 실감하는 주체였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받는 자들에게 연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더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대체하려는 명분으로 청년 현안을 내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청년들을 바보로 아는 행동이다. 청년들이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지 분명히 알고, 이와 연관지어 여성 청년, 대학 밖 청년, 지역 청년, 퀴어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귀 기울여 듣고, 요구사항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 생각들이 많이 들었을 텐데, 내가 아직 취직을 준비해본 적이 없어서 크게 공감하지 못한 것도 있다. 역시 당사자가 되어봐야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읽으며 감상을 정리해봐야겠다.

2017년, 타이완 사법원은 동성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법제가 헌법상 혼인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년 내로 입법이 이루어져야 하며, 불이행 시 민법상 동성혼이 자동으로 허용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발한 보수 세력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법 개정을 저지하고자 했으며, 자본과 미디어 자원을 활용해 여론을 주도했다. 그 결과 민법 개정은 무산되었으나, 별도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기에 이른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저는 민주주의를 믿지 않았습니다. 주로 대학교 내 민주주의를 볼 때 회의감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세습에 가까운 단일 선본이 출마해 선관위가 홍보를 뛰는 형태가 민주주의는 아니잖아요. 그러다가 비상계엄이 있고 나서 학생총회가 성공했을 때, 윤석열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았을 때 민주주의의 정상 작동을 보았습니다. 민주주의자라는 용어가 어색하지만, 어디 가서 물어보면 나는 민주주의자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오늘 이 책을 보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인권을 다수결에 부치는 것도 민주주의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정말 민주주의자로써 부끄러워질 것 같아요.

타이완의 보수 세력은 민법상의 동성혼 법제화를 저지하기 위해 국민투표에 찬반을 부치게 됩니다. 사법원이 헌법상 평등권의 영역이라고 판단했는데도 말입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다수결이라 해도, 그것이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정당성을 잃습니다. 소수 의견 존중의 원칙까지 갈 필요도 없고, 그냥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민주주의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정했으니까요. 그리고 만일 존재의 찬반표결이 정당한 것처럼 국민투표에 부치게 되면 자본력이 많은 쪽이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합니다.

존재를 표결에 부치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정말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특별법으로라도 동성혼이 법제화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민주주의를 앞으로 믿어도 되는 걸까요. 사실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투쟁해야겠죠.

우리 예수님 그렇게 꽉 막힌 분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요. 고등학교 때 어떤 친구가 본인은 디즈니가 싫다며,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보수 세력은 미국이라면 뭐든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때부터 교회를 거의 나가지도 않았고, 종교를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장마오전 목사가 “기독교가 믿는 건 성경만이 아닙니다. 예수도 믿죠.” 라고 말했을 때는 그 의미를 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왜곡 해석한 반동성애를 이데올로기로 삼아, 동성애를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예수가 좋아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인권의식이 괜찮은 목사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응답하라

읽으면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타이완의 민진당이 더불어민주당보다는 더 진보적인 것 같았거든요. 중도보수라고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은 기독교인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정치에 대해 무지한 편이라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고작 차금법에 정치권이 이렇게 반응한다면 갈 길은 멀고 험한 것 같습니다. 마땅한 권리조차 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세상에서 투쟁입니다 투쟁.

마무리

제가 책을 감상하는 기준이 유해서 매번 좋은 책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정말 최고로 좋은 책입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나라 타이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700번도 넘는 회의를 거친 활동가들의 이야기, 보수 정당에서 동성혼 법제화에 힘쓴 국회의원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독후감

인생 두 번째 서퀴인데 부스러가 되었다. 부스 안쪽이 훨씬 더운데도 처박혀있는 것이 나았다. 밖은 인파로 넘치고 굿즈 영업 소리가 째질 듯이 들렸다. 사람이 무서울 시기는 지났지만 어쨌든 바글거리는 서울에 적응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상대적으로 한적하던 대전 퀴퍼가 떠올라 더 움츠러들었다. 아, 난 서울이 너무 힘들다. 정말 힘들다.

솔직히 저 한 문단이 서퀴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는 한다. 그래도 후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이상, 인파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릿속에 담아놓은 걸 얘기해야겠다.

자본주의 퀴퍼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 싶다. 서퀴에 가면 온갖 후원리워드를 파는 부스들이 많다. 간혹 대기업이 참여하는 경우도 흔하다. 퀴퍼의 자본화가 우려된다는 말도 상당할 정도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축제가 시장바닥이 되어 운동성을 잃어간다는 것. 하나는 대형 자본의 개입으로 퀴퍼의 본질이 손상되는 것.

후원리워드에 대해 해명을 하자면, 소규모 퀴어 운동 단체들은 대부분 돈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퀴어 단체들은 후원과 기금으로 굴러간다. 서울퀴퍼는 가장 많은 사람이 오는 퀴퍼이며 후원금을 쌓기 가장 좋은 장소이다. 어쩔 수 없다. 굿즈를 팔아서 후원금을 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종할지도 모르니까. 더러운 세상에서는 돈이 있어야 운동도 할 수 있다. 기왕이면 단체들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면 좋겠다.

후자에 대해 설명해보겠다. 간혹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국의 퀴퍼가 기업과 상업화로 변질될까 우려하는 시선들이 눈에 띈다. 기업 로고에 무지개를 입히고 퀴어 상품들을 판매하지만, 정작 인권 개선에는 소극적인 그런 퀴퍼. 거대 자본기업의 핑크워싱이 판치는 것은 정말로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퀴퍼'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번질까 걱정이 된다. 결국 대응 방식이 소비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퀴퍼의 자본화가 걱정된다면, 직접 참여로 퀴퍼의 운동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어떨까 싶다. 교차적인 의제에 대한 몸자보를 입고 간다든지, 행진에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나선다든지, 혹은 조직위에 뛰어든다든지.

아무튼 모쪼록 대한민국의 퀴퍼가 운동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퀴퍼가 안전하고 예쁜 공간으로만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퀴어퍼레이드' 하면 자동으로 서울만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퀴를 아예 퀴퍼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이 지역의 퀴어퍼레이드에도 신경을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 지방에도 많이 놀러와주세요. 여기에도 퀴어 살아요.

#에세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