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학생사회를 좋아해
활동을 하다 보면 가끔 학생회에 대한 욕을 듣는다. 탈정치화되어 운동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유이다. 나도 자주 공감하고 함께 그 경향성을 욕하지만, 그럴 때마다 찝찝함은 남아있었다. 그 이유를 더듬어 생각해보니, 너무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직 학생사회를 좋아하는 것 같다. 매일같이 총학생회를 비판하지만, 그건 회장이 총학생회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표직에 1년 반 정도 있었던 단과대 학생회는 후임의 후임에게도 인수인계를 직접 해줄 정도로 좋아한다. 총동아리연합회는 말해 뭐해, 사랑한다.
회장에 반대하지만 총학생회가 좋다는 걸까. 마치 대통령을 욕하지만 애국심이 넘치는 사례로 비교해보니, 그런 지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학생회는 무엇일까. 나에게 학생사회는 무엇일까.
학생회가 이제는 운동적 기능은 하지 못하지만, 자치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좋아한다. 결국 '자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회가 좋다기보다는 학생사회가 좋은 것 같다. 계엄 며칠 후 학생총회를 빛내준 학우들이 좋다. 선거에 꼬박꼬박 관심을 가져주는 학우들이 좋다. 대부분이 선거에서 무비판적 찬성표를 던진다는 점에서는 아쉽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학생사회를 이루는 학우들이 좋다. 학우들이 더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학우들의 의견 하나하나가 소중하니 학생회나 대학본부의 정책에 잘 반영되길 바라고, 학생회가 대학본부로부터 학우들을 지켰으면 좋겠다.
문득 이런 정신이 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 살자고 시작한 학생회가 학우들을 통해 '우리 살자'가 되고, 결국 이제는 노동자 민중들 '다 살자'가 되었다. 그토록 강조하던 애민정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학생사회는 정회원들 전부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이 세상의 정회원인 민중들을 좋아해보자. 너무 전체주의적인가.